[Barks. 2013.06] 비디 아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부터 만들어냈다는 게 성공인 거야"

*편집 주: 이 번역문은 Beady Eye K-Bot 트위터 운영 당시 공개적으로 번역 요청을 하여 협력받은 것으로, 오타 수정과 주석, 그 외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편집한 것을 제외한, 모든 번역문은 다른 역자의 작업임을 알려드립니다. 봇 아카이브에 올리는 조건으로 협력을 받았으나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지금은 자료의 아카이브를 위해 우선 백업 블로그인 이 곳에 게시했습니다. 이 게시물에 대해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은 CONTACT PAGE를 통해 문의해주세요.
Interview from Barks, the music magazine of Japan. translated in Korean by dnwjdn (받은 날짜: 2013.06.07)

앨범 “BE” 발매를 앞두고 비디아이의 공식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영상의 대답도 아울러 체크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진지한 말부터, 웃음 짓게 하는 발언까지 비디 아이의 좋은 컨디션이 전해져 옵니다.
“BE”는 만들어진 것 자체가 이미 성공적이라는 멤버들의 절묘한 발언의 조화 즐겨주세요!

──이번부터 새로운 서포트 베이시스트로 제이 멜러가 참여하게 되어 마음이 든든하네요. 제이가 참여하게 된 경위를 알려주세요.
앤디: 제이는 이미 가족의 일원이지. 몇 년 전부터 친구였어. 이 앨범이 완성된 후 (이전 베이시스트인) 제프 우튼은 자신의 앨범을 만들기 위해 다른 길을 떠나기로 결정했지. 그래서 베이시스트를 찾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제이가 우리한테 와서 “베이시스트를 찾는다며, 그게 바로 나야” 라고 말했지.
리암: 제이는 카사비안을 통해 오랫동안 알고 지냈어. 그는 목사야.
겜: 그런가 보더라고. 결혼식을 주례해.
앤디: 네 결혼식 해줬잖아?
겜: 응 맞아. 내 결혼 10주년 기념식 때 주례를 맡았어. 정확하게 제이는 그때 글래스톤베리에서 연주 중이었으니까, 정원에 커다란 스크린을 설치해서 그 안에서
앤디: 스카이프로
겜: 그는 호텔 안에 있었고, 서약의 말에는 전부 레드 제플린의 타이틀이 들어갔어. “Good Times Bad Times”, “Communication Breakdown”, “Whole Lotta Love” 같은 느낌으로.
── 앨범 “BE”는 비디 아이가 새로운 문을 열었다는 것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로큰롤 음악은 이런 식으로 현대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리암의 지금 목소리가 느린 곡과 어쿠스틱 곡도 훌륭한 로큰롤로 만든 다는 점, 이 두 부분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테마나 컨셉트를 정했나요?
리암: “Flick of the Finger”를 작업하고 있을 때 (프로듀서) 데이브 시텍이 지금 같은 사운드로 바꿨어. “Soul Love”나 “Second Bite of The Apple”도. 보컬 부분은, 데모 작업을 할 때 겜이 “Second Bite of The Apple”에 이펙트나 리버브, 슬랩은 별로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가능한 한 그대로 두는 방향으로 정했어.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꽤 잘된 것 같아.
앤디: 괜찮았어. 왜냐면 리암의 목소리는 아주 독특하니까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 뒤에서 뭐든 연주할 수 있지. 네가 말한대로, 마지막에는 “비디 아이”, “로큰롤” 어떻게 부르든 그렇게 되는 거지. 우리들의 사운드가 되는 거야.
겜: 어젯밤에 몇 가지 곡의 모든 악기 음을 들어봤는데, 리암의 목소리가 없다면 30초 듣는 정도로는 비디아이의 곡인지 알기 힘들 거야. 리암의 목소리가 있어서 좋았어. 그게 매력이야.
리암: 만약 이 앨범 보컬에 이펙트가 있었다면 잘 되지 않았을 거야. 미친듯한 전개 부분이 잔뜩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목소리를 그대로 둬야 해. 그러면 미치는 부분을 미치게 살릴 수 있어. 만약 내 보컬에 잔뜩 손을 봤다면 엉망이 됐겠지.
──리암, 당신의 목소리가 보다 자유로워진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런 점은 작업하면서 의식하고 있었나요?
리암: 아니. 뭐 아마도 조금은 의식하겠지. 단지 이번에는 이펙트를 많이 쓰고 싶지 않았어. 집에서 기타를 연주할 때 같은 소리를 하고 싶었어. 그건 정말이야. 나답지 않은 짓을 하면, 나 자신을 속이는 셈이 되지. 하지만 공부 중인거야. 2주 후에는 밋밋하고 단순한 것에 질릴지도 모르지.
겜: 이번엔 그래서 좋았어. 데모에서 떠오른 유일한 아이디어였지. 높고 단순한 것.
리암: 프로듀서랑 같이 40번 정도 노래하면 소리가 날카로워져서 (목소리가) 거칠어져. 거기에 이펙트를 잔뜩 넣어서 되돌려놓으면 목소리가 작아지지. 그건 아니라는 거야. 목소리가 크고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것. 그게 정상적이고 맞는 거지. 그러니까 조금은 의식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많이는 아냐.
──누가 어떤 곡을 썼는지 알려주시겠어요? “Soul Love”는 리암이?
리암: 응
──다른 곡은요?
리암: 내가 “Flick of the Finger” 를 조금. 그리고 “Don’t Brother Me” , “Start Anew” 를 썼어.
――Iz Rite는 겜이?
겜: 응 맞았어.
앤디: 맞춰주는 쪽이 재밌는데?
――리암과 앤디가 Flick of the Finger를?
앤디: 3명이야
겜: 처음 데모랑 멜로디, 곡의 구성, 가사는 나랑 앤디가 같이 썼어. 처음으로 같이 머리 맞대고 작곡한 거야. 괜찮았어. 앞으로도 계속…
앤디: 하면 좋겠지.
――Face The Crowd는 겜?
겜: 아니, 앤디야.
――Soon Come Tomorrow는?
앤디: 나야
리암: 크리스도 했지? (전원 동의한다) 두 명이야.
――Second Bite of The Apple은?
겜: 나야
――Ballroom Figured는?
겜&크리스: 우리.
――방금 전부터 이야기 된 데이브 시텍에 대해 질문할게요. 오래된 팬으로써, 지금 현재 듣고 싶었던 비디아이의 앨범이 태어났는데요. 그것은 즉, 시텍이 오아시스나 비디아이의 팬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나요?
앤디: 시텍은 우리들의 엄청난 팬인데, 비밀로 하고 싶어하더라
리암: 그는 우리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어. 나도 ‘너 들어본 적 없어’ 라고 대답했지. 우리들은 오아시스나 비디아이에 관한 건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저 “5주간 여기서 지내. 잘 지내보자” 란 느낌이었지. “지금까지 가본 적 없던 곳에 가보자”라는 느낌.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했지. 과거는 상관없이.
겜: 신선했어
리암: 그는 최고야. 독특하고, 그런 녀석 쉽게 만나기 힘들지. 좋은 녀석이야.
――데이브에게 의뢰한 경위를 말씀해주세요.

ゲム・アーチャー何人か考えているプロデューサーはいたんだけど々な理由でスケジュールが合わなかったでも俺たちはスタジオへ入る時間は決めてたしデモもたくさんあっただからどっちみちスタジオへ入るつもりだったんだけどマネージャーのスコットが彼の名前を出してきた予期せぬものでうまく行くかわからなかったレコーディングの初日まで直接会ったことはなかったし双方ともに頼」というよりって感じだったどんな風になるかまったくわからなかったデイヴもそうだったはずだ

겜: 몇 명 정도 생각해 둔 프로듀서가 있었는데, 여러 이유로 스케줄이 맞지 않았어. 하지만 우리가 스튜디오에 들어갈 시간은 정해놨었고, 데모도 많이 있었어. 그러니까, 어차피 스튜디오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메니저인 스콧이 그의 이름을 꺼냈지. 예상치 못한 것이 잘 될지는 알 수 없었지. 레코딩 첫 날까지 직접 만난 적도 없었고, 서로 ‘신뢰’라기 보다는 ‘모험’에 가까웠지. 어떤 식으로 될지 전혀 모르겠더군. 데이브도 그랬을 거야.

──데이브와 같이 작업하면서 놀랍거나 새로웠던 점은?
앤디: 시텍의 접근은 신선했어. 밴드로서 같은 감각이 싹 터서 금방 이해할 수 있었고, 그가 이미 가지고 있던 비전에 의기투합 할 수 있었지. 우리들은 “색다른 것을 하자” 라는 오픈 마인드였고 곧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만약 한 가지가 잘 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바로 다음으로 진행 할 수 있었지. 매일 신선한 접근을 계속할 수 있었어.
리암: 정해놨던 건 아무것도 없었어. 오픈 되어 있었지. “체크해보자,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없으면 문을 닫고 열쇠로 잠그자” 그래서 “다음 문을 열어서 들어가 보자, 그랬더니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이잖아!!” 라는 느낌이었지.
앤디: 재미있었어. 엄청 웃었어. 웃겨 죽는 줄 알았어.
리암: 모두 실험적이라고 하지만, 실험적인 게 아냐.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야. 우리들은 언제나 그래. 하지만 잘 안될 때도 가끔 있었지만.
겜: 그가 말한 대로 해보고, 너무 지나치면 되돌아온다. 데이브에게 중압감은 없었어. 어떤 경우에도 전체를 듣고 있어. 세세하게 체크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일일이 걱정하지 않아. 베이스가 맞나 안 맞나를 체크하는 타입이 아냐. 만약 잘 안 돼서 마음에 안 들면 잘 되게 하는 거지. 그래도 안 되겠으면 파기해. 그게 우리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점이야. 그가 “빠르게 하고 싶다” 고 하면 “우리도 마찬가지야” 라는 거지. 하루에 3곡을 요구해도 우리들도 “그래 해보자” 고 했지.
――타이틀에 대해 알려주세요. Beady Eye의 머리 글자인지, ”Be Here Now” 같은 be동사인지.
리암: “Beady Eye”이자 “BDI”이며 “Be over there then”이고 (참고 : 오아시스의 앨범 타이틀 “Be Here Now”의 반대되는 말을 늘어놓고 있다) …. “BE”는 단지 … 별거 아냐. “BE’는 ‘BE’야.
겜: 생각하기 나름이야.
――그럼 “BE”는 열린 의미라는 건가요?
리암: 응 맞아. 가장 짧은 앨범 타이틀이지.
겜: 틀림없지.
 ――앨범 커버에 대해서도 질문해보겠습니다. 사진작가 해리 페치노티의 작품은 원래 좋아했었나요?

앤디: 우리 디자이너 트레버 잭슨이 디자인했어.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란 건 알고 있어. 1970년대 패션 사진이야.

겜: 그의 부인이잖아.
앤디: NOVA 매거진이야
겜: 응
앤디: 맞아 그의 부인이야.

──앨범의 공간적인 분위기와 여체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이 자켓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겜: 앨범 타이틀이랑 같은 날에 정해진 거야. 그녀는 ‘BE는 무엇인가’ 를 알고 있는 듯이 보였어.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지? 그녀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
앤디: 사진 속의 여백, 그녀 주위의 공간은 정신적인 공간으로도 느껴져.
──“Don’t Brother Me”에 대해서 영어권이 아닌 저희에게 제목의 의미를 알려주시겠어요?
리암: Don’t bother me… (참고 : 원래 영어 의미 ‘상관하지마’라고 발언)
――이건 노엘에 대한 건가요?
리암: 응, 지금은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나한텐 두 명의 형제가 있어. 어느 쪽이건 성가실 때가 있어. 일반적으로 형제는 그렇잖아? 나를 오해하는 놈들도 있는데, 그냥 좀 내버려두라는 소리지.
――그럼, 노엘에 대한 것이 아니다?
리암: 누구든지간에 (어디에선가 나에게) 보내온 말을 내가 쓴 것 뿐이야. 내 인생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 내려온 것을 곡으로 쓴다. 아침에 일어나서 홍차를 만들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마중 나가는 것 말이야.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지. 그걸로도 잘 가고 있는 것 같고, 어 그래 쿨 해. 평생 이렇게 사는 거지. 간단하게 다른 걸로 바꿀 수 있었지만, 그건 제대로 되지 않았어. 불안함은 없어. 쓰고 그걸 내는 것뿐이야.
――노엘은 이전 취재에서 “내가 같이 밴드를 하고 싶은 멤버는 전부 비디아이에 있으니까 난 더 이상 밴드는 하지 않아. 난 싱어송라이터야” 라고 했습니다. 그런 노엘은 지금 여러분에게 있어 가장 큰 라이벌인가요? 아니면 라이벌은 오아시스? 혹은 비디아이의 첫 번째 앨범?
리암: 만약 오아시스를 계속 했으면 비디아이는 없었겠지. 이렇게 돼서 기뻐. 멋지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좋은 음악이 태어났지. 라이벌 같은 건 없어. 우리들은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야. 오아시스 따위 아무래도 좋아. 하이 플라잉 버즈도 아무래도 좋다고. 형에 대해선 언제나 빈정거리고 있지만 그게 내 일이야. 형은 더 멋지게 맞받아치고 있고, 난 앞으로도 이럴 거야. 음악적으로 우리들은 그저 자기자신을 몰아가고 있는 거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만약 그게 성공을 가져오면 가져올 테고, 망하면 망하는 거지. 성공이란 게 도대체 뭔지. 우리들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부터 훌륭한 앨범을 만들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앨범의 새로운 곡들은…
겜: 탄생하지 않았지.
리암: 존나 신기하지. 좋든 나쁘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별개야. 우리들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부터 만들어냈다는 게 성공인 거야. 그게 가능한 녀석은 그렇게 많지 않아.
겜: 지금을 산다. 우정. 무언가를 만든다. 그런 것을 받아들여야 해. 그게 성공인거야.
──이번 여름에 섬머 소닉 참가로 일본에 올 예정이신데요. 기대되시나요?
리암: 물론이지. 일본에 가는 건 언제나 기대돼. 멋지고 사랑하지.
──어떤 무대가 될까요?
리암: 평소랑 똑같아.
겜: 우리들이 그곳에 선다. 아 맞다, 앤디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갔어.
앤디: 엄청 충격적인 상황이지. 무대에서 내 위치가 바꼈어.
크리스: 그래서 그는 지금 드럼이야.
리암: 앤디가 와일드해졌어.
앤디: 미쳤지.
리암: 우리들은 무대에 올라가서 큰 소리를 내고 우리들을 할 일을 하지.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을 주는 거야.
겜: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면 그 곳엔 언제나 특별한 요소가 있지.
──이전에는 신인 밴드니까 헤드라이너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요. 이제부터는 헤드라이너를 하시는 건가요?
앤디: 준비는 되어있어. 그게 일의 절반이지?
리암: 우리는 단순해. 헤드라인이라고 하면 헤드라인을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제안이 오는 대로야. 첫 번째라고 하면 첫 번째로 서는 거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우리가 하는 일에 자신이 있으니까 누가 마지막이고 누가 처음이고 같은 건 신경 안 써.
앤디: 우린 헤드라인을 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헤드라인에 고집하고 있지 않아. 만약 하라고 하면 여기서도 연주 할 수 있어.
리암: 아마 2012년에 헤드라인 했었어. 우리들 앞에 밴드들이 나왔다고. 우린 언제나 헤드라인의 준비는 되어있어. 이미 몇 년 전부터 말야. 그 쪽은 우리를 헤드라인으로 맞을 준비가 된 거야?
──Pretty Green 일본 1호점이 생기고 약 1년이 지났습니다. 브랜드를 전개하면서 당신이 지금 고집하고 있는 것은 어떤건가요?

리암: (1주년 기념) 벌써 그래? 잘 되고 있어? 아직 문 안 닫았어? 와 대단하네. 1주년 기념? 남쪽에서도 No.1이 되려고 하고 있어. 나고야도 괜찮지. 여러 가지 계획 중이야. 잘 될 것 같아. 그런데 유니온 잭의 큰 사진 (참고 : 아오야마점의 벽면에 있는 리암의 사진) 이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 있나 봐. 

크리스: 진짜?
리암 : 엿먹으라고 일본어로 말해줬지.

── “Don’t Look Back In Anger”, (리암이 이상한 얼굴을 했다) 맥주 광고에 “Whatever” 도 사용되었고, 오아시스를 모르는 아이들마저도 오아시스의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그럼 지금 여러분에게 있어서 오아시스 곡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리암: 좋은 곡이지. 그러니까 모두가 듣고 싶어해. 그게 다야.
앤디: 연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두가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야. 우리도 연주하는 걸 즐기고 있어.
겜: 그건 최고 클래스야. 명곡의 하나가 되었지.
리암: 비디아이의 몇 곡도 같은 레벨이야. 모두가 듣고 싶어하니까 우리들은 연주하지. 그렇지 않으면 연주 안 해.
──그럼 마지막으로, 새 앨범과 섬머 소닉을 기대하고 있는 일본 팬들에게 메시지 부탁 드립니다.
겜: 기대돼서 죽겠어
리암: 무대에 서서 너희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어. 라이브로 연주하고 모두가 즐거워해주면 좋겠어. 즐기자고! 술도 많이 마시고!
겜: 그래, 병원에는 실려가지 마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향해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리암 : 이거 보고 있어? 학교에 가야 하잖아. 학교에 가. 나중에 필요하게 되니까.

[RTE TEN, 2013.06.07] 앤디 벨 인터뷰

Music Feature
A Bell Will Ring Friday 07 Jun 2013

비디 아이가 이제 막 그들의 두번째 앨범, Be와 함께 돌아왔으며, 어쩌면 이 앨범은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리암 갤러거의 포스트-오아시스 밴드를 재-평가하게 만들만한 앨범이 될 지도 모른다. Alan Corr가 비디 아이의 기타리스트 앤디 벨과 함께 60년대에 보내는 good monstering과, 리암, 노엘 그리고 데이브 시텍과 작업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Andy Bell, well-spoken Oxford gent and hip young-ish guitar slinger, first encountered Oasis during his time with Hurricane #1 in the mid-90s. The former Ride guitarist clicked with the Gallagher brothers and while his own fortunes waned, he was said to enjoy partying with the then hell-raising Mancs.

재치 있는 옥스포드의 신사이자 힙하고 젊어 보이는 기타 연주자인 앤디 벨은, 그의 인생 최초로는 90년대 중반 허리케인 #1으로서 오아시스와 맞닥뜨렸다. 전 라이드 기타리스트였을 때는 갤러거 형제와 잘 어울리곤 했으며 그의 운이 시들어갈 무렵에는, 당시 소란을 피우곤 했던 맨시티 팬들과 파티를 즐기곤 했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After Hurricane #1, a band who owed a serious debut to Oasis, blew out, Bell had a brief spell with the much-maligned Gay Dad before he and Gem Archer were invited to join the Gallaghers after the departure of Oasis founding members, Bonehead and Guigsy. Bell spent ten years in their ranks, enjoying premier league rock band success for the first time and stoically enduring the ups but mostly downs of Liam and Noel’s relationship.

허리케인 #1은, 오아시스에게 심각하게 데뷔를 빚진 뒤, 공중 분해되고, 벨은 오아시스의 창립 멤버인 본헤드와 귁시가 떠난 이후 그와 겜 아처가 갤러거즈로부터 초대받기 전까지는 지나친 비판을 받곤 하는 밴드였던 Gay Dad에 짧게 머물렀었다. 벨은 10년 간 그 지위에 머무르면서, 처음에는 프리미어 리그 록 밴드의 성공을 즐기면서도 냉정하게 그 단 맛을 견뎌내왔으나 주로 리암과 노엘 사이의 관계에서는 쓴 맛을 보았다.

When the brothers eventually fell out for good after a very ugly stand-off in Paris in 2009, Bell decided to take part in Liam’s plans for a post-Oasis comeback. Apparently Noel hasn’t spoken to Bell since. Now Beady Eye have released their second album Be on which Bell has written three songs. And guess what? They’re the best songs on the album.

그 형제가 2009년 파리에서 굉장히 추한 교착 상태를 벌이고 끝끝내 영원히 사이가 틀어진 이후에는, 벨은 리암의 포스트-오아시스 컴백 계획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보아하니 노엘은 그 동안 벨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듯 하다. 이제 비디 아이는 벨이 세 개의 곡을 쓴 두번째 앨범 Be를 발매했다. 과연 그 곡들은 어떨까? 바로 앨범에서 가장 좋은 곡들이다.


Alan Corr: Is it true that when producer Dave Sitek met Beady Eye first he told you were stuck in 1969?

데이브 시텍이 비디 아이를 만났을 때 처음으로 했던 말이 여러분이 1969년에 갖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Andy Bell: “Well he didn’t say it in so many words but we were thinking the same thing ourselves. We knew we were in a bit of a sixties vibe and I think we always will be but we’re also open to that being enhanced or changed. What we did with Dave was very complimentary to our fallback style. I still think the new album is very sixties and I can hear all that in there. I don’t think our musical style got changed. I think it got broadened.”

앤디 벨: “뭐 그 사람이 꼭 그런 식으로 말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스스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자신이 어느 정도 60년대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내 생각에 우리는 언제나 그럴 것 같지만 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향상시키고 변화시키는 일에도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데이브와 같이 했던 일들은 우리의 안전한 스타일을 충분히 보완하는 것이었다. 난 여전히 새 앨범도 굉장히 60년대 풍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모든 부분에서 그런 요소를 들을 수 있다. 난 우리의 음악적 스타일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폭넓어진 것일 뿐이다.”

If not 1969, the spirit of ’68 informs at least one song on the album – Flick The Finger which samples a speech by at an anti-Vietnam War rally in London

만약 1969년이 아니라면, 적어도 한 가지 곡은 68년의 정신을 담았다고 볼 수 있겠다 – Flick Of The Finger에는 런던에서 있었던 반-베트남 전쟁 집회에서 따온 연설문이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Absolutely right. That speech is from a sample we used on a demo and it’s from a television programme about 1968. There is not much of that sense of revolution these days. It’s definitely there in the world but not necessarily in our soap opera and X Factor society. it’s definitely not in music anyway. Bobby Gillespie said recently that there was no rebellion in music right now and I was thinking well Flick The Finger is out now and that’s at least one song with a bit of rebellion in it. I think people like us and Primal Scream there’s anger in our music in the rock `n’ roll we do and that comes from a counterculture legacy. It comes very naturally to me and with Bob, it’s more in his lyrics and his interviews. In terms of other bands doing that, I’m sure there are lots of them but I don’t see many.”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그 연설은 데모에서 썼던 샘플에서 따온 것인데 바로 1968년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온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런 혁명 의식이 그다지 많지 않다. 세상에는 분명 그런 정신이 있지만 연속극과 엑스 펙터(*오디션 프로그램)로 이루어진 우리들 사회에서는 그런 정신이 꼭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어쨌든 음악에는 확실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바비 길레스피는 지금의 음악엔 그 어떤 반항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고 나는 뭐 이제 Flick Of The Finger가 나왔으니 적어도 반항적인 곡 하나 정도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 생각에 우리들이나 프라이멀 스크림 같은 사람들이 하는 로큰롤 음악에는 분노가 담겨 있고 그 분노는 바로 반체제적 유산으로부터 온다. 그건 나와 바비에게서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고, 그의 가사와 인터뷰에는 그런 부분이 더 많이 담겨 있다. 다른 밴드들이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밴드들이 그렇겠지만 그렇게까지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고 확신한다.”

You’ve written three songs on Be. In terms of the division of labour, I know there were rumblings from Noel when you were Oasis about song writing but it seems there’s a very democratic set-up when it comes to writing in Beady Eye

당신은 Be에서 세 개의 곡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 노동 분배적 관점에서 보자면, 당신이 오아시스 시절 곡을 쓰는 것에 대해 노엘과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비디 아이에서는 곡을 쓸 때 굉장히 민주적인 체제가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There is. When we’re demoing songs, we rotate though Liam, Gem and myself. We’ll bring a song in that maybe needs a bit of work and make the demo. Every song gets a lot of love and we help each other. It really does show that in some bands teamwork is the way. No one in the band would claim to be a complete song writer in the way that Noel Gallagher obviously is, he’s the whole package. In our band, it’s between the three of us. None of us can deliver everything on our own and we know that.”

“그건 그렇다. 우리가 데모를 만들 때에는, 리암, 겜, 그리고 나 사이에서 서로 돌려보곤 한다. 그런 식으로 조금 작업할 필요가 있는 곡들을 가져오고 데모를 만든다. 모든 곡에는 많은 애정이 담겨 있고 우리는 서로 서로를 돕는다. 몇 몇 밴드가 하는 팀워크 방식도 정말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밴드의 그 어떤 누구도 분명히 노엘 갤러거가 그랬던 것처럼 곡의 완전한 작곡가임을 요구할 수는 없을 텐데, 노엘은 완벽한 하나의 패키지이기 때문이다. 우리 밴드에서는, 그런 건 우리 세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우리 중 어떤 누구도 제 스스로 모든 것을 이끌고 나갈 수는 없고 우리도 그 점을 알고 있다.”

So compared to Noel’s Angry Birds, you really want to have a united front as a band

그렇다면 노엘의 앵그리 버드와 비교해보자면, 당신은 밴드로서 연합 전선을 만들고 싶은 건가.

“It’s the reality. It is a band. It’s as simple as that. We’ve been playing together for years, just in two different bands so that I think does come through. Me, Gem and Chris have a beautiful sound together which really works especially live. For our tour, we have a keyboard player called Matt Jones, but we’re being joined by Jay Mehler from Kasabian as a bass player and he’s bringing in something new too.”

“그게 현실이다. 이건 밴드다. 말 그대로 말이다. 우린 몇 년 동안 같이 연주해왔었고, 그저 두 개의 다른 밴드에 있을 뿐이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그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나와, 겜 그리고 크리스는 특히 라이브에서 정말로 아름다운 사운드를 낸다. 우리 투어에서는, 맷 존스라고 하는 키보드 연주자가 있기도 하지만, 카사비안에서 온 제이 멜러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고 그 역시 뭔가 새롭고 특별한 요소를 들여오고 있다.”

One of your songs, Soon Come Tomorrow, initially sounds like a pretty conventional rock song but there are some very interesting things going on underneath it all

당신의 곡들 중에서, Soon Come Tomorrow는, 처음엔 꽤나 관습적인 록 음악으로 들리지만 전체적으로는 뭔가 어느 정도 흥미로운 요소가 그 밑에 깔려 있는 듯 하다.

“I know, it’s crazy. That’s the one where I have no idea what is going on with it, what’s going on with the atmospheric s. We recorded our version and then Dave started whipping up this atmospheric soup around it and it really suits the tune, it lifts it and puts you in a certain headspace which fits the lyrics. He did a great job but I couldn’t tell you what he did with it. He uses an early synthesiser for strings called a solina which was a fake orchestra keyboard thing that was out in the late seventies.”

“알고 있다, 정말 미친 거 같다. 그 곡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어떻게 분위기를 전개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곡이다. 우린 우리 버전대로 곡을 녹음했었고 그 다음 데이브가 그 주변에 이런 분위기를 끼얹기 시작했는데 그게 굉장히 곡에 어울리는 건 물론이고, 가사에 어울리는 정확한 기분으로 당신을 이끌어낸다. 그는 굉장한 일을 해냈지만 그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설명해줄 수 없다. 그는 solina라고 하는 스트링을 쓰기 위해 초기 신시사이저를 사용했는데 후기 70년대에 나온 가짜 오케스트라 키보드의 일종이다.”

The cover art for Be is shockingly retro – a beautiful girl in profile lying down bathed in the kind of sunlight that only existed in 1974. She is also naked. Are you worried that some American retailers might take a dim view of this?

Be의 커버 아트는 충격적일 정도로 레트로한데 – 햇살 같은 것을 온 몸에 받으며 누워 있는 아름다운 소녀의 옆모습은 1974년에나 존재하던 것이다. 그녀는 벌거벗고 있기까지 하다. 미국의 소매업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내릴 비관적 견해에 대해 우려해본 적은 없는가?

“I think the use of a well-placed sticker will cover up any offending areas and when people get home they’ll pull the sticker off and be confronted with the full horror of a human body. We thought we were being quite risque but nobody seems to have batted an eyelid. The sticker thing has just solved it without it becoming an issue and even in Japan they’ve released it.”

“내 생각에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스티커로 적절하게 가릴 것이고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서 스티커를 떼내고 나면 그 때 즈음에서야 인체의 완전한 공포에 직면하게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약간의 리스크를 안고 간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도 눈 하나 깜짝하는 기색이 없는 것 같다. 스티커 같은 것들이 다 해결해 줄 것이고 그게 없다면 이슈가 되겠지만 일본에서조차도 그대로 발매되었다.”

Have there been any concerns about Liam’s voice? After years of well, cigarettes and alcohol and singing with Oasis and Beady Eye, is it showing signs of wear?

리암의 목소리에 대해 우려했던 것은 없는가? 목 상태가 좋았던 몇 년 이후에, 담배와 술을 하고 오아시스와 비디 아이에서 노래를 하면서, 마모되는 듯한 조짐이 보이지는 않았는가?

“There has been no concern whatsoever about Liam’s voice. Liam’s got an amazing voice. In fact, on this album we wanted to take away the effects we had been using so the voice is a lot more bare and intimate and it’s double-tracked so much, so it’s in the room with you feeling and that suits the introspective tunes on the album. Lots of singers’ voices get tired on tour and Liam really belts it out so he gets tired. He can’t do three gigs on the bounce and that’s one of the things we have to observe on tour. His voice is not shot in any way – he is singing beautifully and I’ll tell you what, check out the session we did in Abbey Road for Absolute Radio. It’s Liam singing unadorned and he sings like a little lark.”

“리암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한 번도 우려해본 적이 없다. 리암은 굉장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사실, 이 앨범에서 우리는 그동안 써왔던 이펙트들을 전부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보컬이 훨씬 더 날 것 그대로이고 친숙하며 정말 많이 이중 녹음되었기 때문에, 방 안에서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대로이고 이번 앨범의 자기 성찰적인 음악에도 어울린다. 많은 수의 보컬들이 투어를 겪으면서 지치게 마련인데 리암은 굉장히 강하게 노래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 또한 지치게 된다. 한 번에 세 개 공연을 할 수는 없고 그것이 바로 투어를 하면서 우리가 알게 된 점 중 하나다. 그의 목소리는 아무렇게나 나오지 않는다 – 그는 아름답게 노래하며 내가 한 마디 해보자면, 우리가 전에 했었던 앱솔루트 라디오의 애비 로드 공연을 확인해보길 바란다. 꾸밈 없이 노래하는 리암 그 자체고 마치 작은 종달새처럼 노래한다.”


The reviews for Be in the British media have been uniformly three out of five. Do you think journalists constantly hedge their bets when it comes to Beady Eye?

영국 매체에서 Be의 리뷰는 한결같이 5점 만점에 3점이다. 당신 생각에는 저널리스트들이 비디 아이를 평가할 때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잘못 짚고 있다고 보는가?

“Yeah. I’m just pleased that the reviews are generally positive but I don’t expect to get the gushing ten out of ten type things. This band has a lot of baggage and I think that’s probably the main reason. I think the album is great, if only I was reviewing it! The media may not be fans. It doesn’t bother me as long as we connect with our audience and I think this time more than the last that’s happening. I have a feeling that people we are reaching out to our there.”

“그렇다. 리뷰들이 대체로 긍정적인 것은 기쁘지만 10점 만점에 10점을 마구 쏟아내는 건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 이 밴드에는 쌓여있는 앙금이 너무 많은데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것이 바로 주된 이유 같다. 만약 내가 이 앨범을 리뷰했었더라면, 굉장하다고 생각했을텐데 말이다! 아무래도 미디어들은 팬이 아닌 모양이다. 우리가 우리 관객들과 연결되어 있는 한 그런 점은 신경쓰이지 않고 내 생각에 이번에는 그 전번보다도 더 그런 거 같다. 우리가 저 너머의 사람들에게까지 닿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Even though it’s four years since Oasis split, even now the battle lines are being redrawn between Noel and Liam. How hard is that to rise above?

오아시스가 해체한 지 4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노엘과 리암 사이의 전선은 지금까지도 다시 쓰여지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 상황을 견뎌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It’s a weird one. Liam said it pretty well the other day. His favourite band is The Stone Roses and they’re one of my favourite bands too and when they broke up, nobody felt the temptation to take sides. Bands break up and it’s a natural thing especially after 10, 12, 15 years together. All I can really do is take it as a compliment and take it as love for Oasis’ music.”

“그건 이상한 부분이다. 리암이 일전에 괜찮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스톤 로지즈고 그 밴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들 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들이 해체했을 때는, 아무도 편가르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밴드가 깨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특히 10년, 12년, 15년 뒤에 다시 함께하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걸 그냥 찬사로 받아들이고, 오아시스의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서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없다.”

And is Liam – in the words of Noel – still a man with a fork in a world of soup?

그리고 리암은 – 노엘의 말을 빌리자면 – 여전히 수프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포크를 든 남자인가?

“I think he found a spoon.”

“내 생각에 그는 스푼을 찾은 것 같다.”

[L4E Forum 2013.01] Pretty Green Party: 멤버들에게 2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메모는 2013년 1월에 있었던 프리티 그린 파티에서 비디 아이 멤버들을 만난 팬이 L4E 포럼에 적어 올렸던 수기를 짧게 옮긴 것입니다. 원 글 스레드를 찾는 대로 링크하겠습니다.)

겜:

다음 주(그러니까 지금 시점인 1월 3주차)에 앨범을 믹스할 예정.
언제 앨범이 나올지 확신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해서 레이블과 협의할 일이 많으며 밴드에서 내야겠다 싶은 시점에 나올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게 조금 지겨워보임.
다음 앨범에 대해 엄청난 변화(big change)였다고 묘사함. 로큰롤 앨범이 아니며, 완전히 새로운 사운드임.
다른 것과 비교해보자면 어떻냐고 물어보자 애초에 다른 것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대답함.

제프:

앨범 작업에 처음부터 참여해왔다. 믹싱 파트를 앞당겨 30여개의 곡을 녹음했으며 트랙 리스트는 아직 미정.
World’s Not Set In Stone이 앨범에 수록되지 않을지도 모르며(may not) 지금 작업하는 버전은 작년 라이브 버전에서 완전 새로 갈아엎은 것임.
그리고 본인이 지금까지 참여해온 것 중 가장 독특한(out there) 앨범임.

리암:

자기한테 대고 “Beady Eye are fucking back with a bang” 라고 친구들한테 말해놓으라고 함.
다음 앨범은 사람들을 껌뻑 죽게 만들 것이며 자기가 이렇게 말하기는 싫지만 매우 실험적이라고 함.
마음 같아서는 4월에 싱글을 내고 싶지만 지금 시점에서 앨범은 여름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함.
첫 앨범과는 수준이 다르며, DGSS에 대해 조금 자신 없어하는 모습을 보였음. 심지어 DGSS를 좋아한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말함.

앤디와도 대화를 나눴지만 디제잉 중이었기 때문에 많이 이야기는 못했음. 가장 핵심은 멤버들 모두 2집에 대해선 엄청 신난 모습이지만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확신을 못하고 있다는 점.

[Drownd in Sound. 2012.09.28] 앤디 벨: 우리가 그 곡들을 다시 한 번 연주하지 못한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http://drownedinsound.com/in_depth/4145511-andy-bell-of-ride-amp-oasis–it-would-be-a-shame-if-we-never-got-to-play-those-songs-one-more-time

라이드와 오아시스의 앤디 벨: “우리가 그 곡들을 다시 한 번 연주하지 못한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by Dom Gourlay 7 comments 09:39 September 28th, 2012






살짝 귀띔을 해주자면 앤디 벨은 음악가로서 어느 새 25년의 세월 동안 활동해왔다. 1998년에 학창시절 친구였던 마크 가드너, 그리고 대학에서 기초미술 전공을 공부하면서 만난 스티브 쿼럴트와 로즈 콜버트와 함께 라이드를 결성하게 되면서, 벨과 그 동료들에게는 다분히 그 시대에 가장 획기적인 앨범을 만들어 낼 책임이 주어졌었다.

그들의 첫 네 개 EP와 걸작 데뷔 앨범 Nowhere은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역사적 작품으로서 자랑스럽게 남아 있으며, 1992년에 이어서 발표된 Going Blank Again은 (이 앨범은 최근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재발매되었으며 Drowned In Sound에서는 10점 만점에 9점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당시 모진 평을 들었었던 슈게이징 씬의 일부에서부터 자라난 밴드의 성장을 눈부시게 비추게 되어 그들에게 진정한 선구자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슬프게도, 이 모든 좋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라이드가 무너지는 데에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고 4년 간 두 앨범을 발표한 뒤에는,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라이드의 종말 이후, 벨은 1997년 브릿팝이 한창일 무렵 허리케인 #1을 결성했고, 두 개의 앨범과 비교적 성공한 한 줌의 싱글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호평이 좀처럼 나오기 힘들었던 이유는 주로 그들이 갖고 있었던 오아시스와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마 벨의 다음 음악적 행보가 1999년에 폴 맥기건(※역주: 귁시)의 자리를 이어 베이시스트로서 갤러거 형제와 함께하는 일이었던 것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이후 10년 뒤 형제의 험악한 결별이 있기 전까지 쭉 오아시스에서 활동을 계속했으며, 마지막 3개 앨범 작업에 기여해왔다.
이제, 전 오아시스 멤버인 겜 아처, 크리스 샤록 그리고 물론, 리암 갤러거와 함께, 비디 아이를 결성한 벨은 스튜디오에서 다시금 자기 자신의 천분을 발견했으며, 현재는 작년에 발매됐던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을 잇는, 그가 몸 담은 밴드의 아직 이름 없는 두 번째 앨범을 위한 데모 작업을 하고 있다. DiS가 길어진 휴식기 동안 그와 만나 Nowhere과 Going Blank Again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에서 토론으로 바뀌어버린 이야기들과, 허리케인 #1을 그만 둔 뒤 그가 느꼈던 환멸에 대해서, 갤러거 형제와 작업해온 것에 대해서 그리고 언제나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인; 라이드와 오아시스가 재결합해 단 한번이라도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물어보았다.

DiS: What are you up to at present and how are the new songs shaping up?
최근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신곡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Andy Bell: We’re still at the writing stage and then recording a few demos from what we have. We’ve been making demos for pretty much the whole of this year. It’s always good to have far too much music before going into the studio and beginning the actual recording process.
여전히 작곡 단계에 머물러 있고 데모 몇 개를 녹음하고 있는 중이다. 거의 이번 해 내내 데모를 만드는 데 시간을 보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 제대로 녹음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많은 곡을 쌓아 두고 있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다.

DiS: Are you heavily involved in the writing process with Beady Eye?
당신은 비디 아이의 곡 작업 과정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가?
Andy Bell: Me, Liam (Gallagher) and Gem (Archer) are all equal partners when we’re writing, which means we all get to make sure none of us has a song that sounds too much like “me” – in the collective sense of the word. It’s a good way of working because it means none of us have our individual stamp on anything we do. It’s all about what’s best for Beady Eye.
나와, 리암 (갤러거) 그리고 겜 (아처) 은 곡 작업을 할 때는 모두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위치에 있는데,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모두 확실히 지나치게 “나” 같은 곡을 쓰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공동체적 의미에서 말이다. 이것이 좋은 작업 방식인 이유는 우리가 하는 그 어떤 작업이든 거기에 개인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비디 아이를 위해 과연 무엇이 최선일지가 모든 것의 핵심이다.

DiS: You’ve recently started incorporating Oasis songs into your live set with Beady Eye. Is this something you intend to do on a regular basis for the foreseeable future?
최근 비디 아이의 라이브 셋리스트에 오아시스 곡을 포함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일을 위한 포석을 깔아 둘 생각인건가?
Andy Bell: I’d say it’s something we’ll definitely do again, yes. The reason we didn’t play Oasis material from the outset was because we wanted Beady Eye to create its own identity. So when we started touring around the world we wanted to get everyone that came to our shows used to the idea that we are a new band, and not just a continuation of the old one, even though when you come and see Beady Eye we look pretty much like Oasis on stage. Except Noel’s (Gallagher) not there.
우리가 확실하게 다시 할 수도 있는 어떤 일이라고 말해 두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우리가 처음부터 오아시스 곡을 공연하지 않았던 이유는 비디 아이 그 자체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월드 투어를 시작할 때 우리는 우리 공연에 오는 모두가 ‘우리는 새로운 밴드이고, 단지 옛 밴드와의 연속성만이 있는 밴드는 아니라는 것, 비록 당신이 비디 아이란 밴드를 보려고 공연에 왔을 때 우리가 꽤나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밴드라는’ 생각에 익숙해지길 바랐다. 단지 노엘이 없는 것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DiS: Are you pleased with how everything’s turned out for Beady Eye so far?
지금까지 비디 아이에서 이루어진 모든 결과에 대해 만족하는가?
Andy Bell: Yeah, it’s been cool.
그렇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

DiS: Some people probably don’t realise or might not be aware that you’ve been a recording artist now for almost a quarter of a century. How does that make you feel?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한 세기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는 시간 동안 작곡을 해 온 음악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아예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Andy Bell: Old! But yeah, it is quite mad. Twenty years is a long time. We put out the twentieth anniversary edition of Nowhere at the start of last year and now we’ve just done the same thing with Going Blank Again. Thinking back from Nowhere, twenty years before that it was the end of the sixties, 1970 I think. To be the same difference from that with Nowhere and then again to now kind of puts it all into perspective. You think about how young rock and roll music really is. It’s not like we’re a million miles away from the creation of the (rock and roll) big band era. We’re still seeing the reverberations of that happening. The music world keeps changing in a massive way. When you see the internet and think how music’s changed in the last ten years, some of it in ways you’d never previously have imagined. That time has gone very fast.
오래됐네! 그렇지만 그래, 좀 화는 나는군. 20년의 세월은 아주 긴 시간이다. 우리는 작년 초에 Nowhere의 20주년 기념 앨범을 냈고 지금 이제 막 Going Blank Again의 역시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을 발표했다. Nowhere의 시점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이 앨범이 나오기 20여 년 전은 60년대의 끝자락일 것이다, 아마도 1970년이겠지. Nowhere에는 그와 같은 정도의 간극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젠 그 모든 것들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로큰롤 음악이 얼마나 젊은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로큰롤) 거대 밴드의 시대가 남긴 창작물들로부터 엄청나게 동떨어져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 때가 남긴 잔향들을 볼 수 있다. 음악계는 언제나 커다란 방향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터넷이 나타나면서 근 10년 간 음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떤 것은 당신이 절대로 그 이전에 상상해 보지도 못한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지나갔다.

DiS: When you first started out with Ride in 1988, were there any expectations as to what you wanted to achieve? Did you set yourselves any goals or targets back then?
당신이 1988년에 Ride를 처음 시작했을 때, 당신이 얻고자 했던 어떤 기대하고 있던 것이 있었나? 그 당시에 어떤 목표나 타겟 같은 것을 세워 놓고 있었는가?
Andy Bell: I think it will be a different answer from each member of the band. We were definitely quite confident in ourselves. We were big indie heads for a start. We were all NME readers, we all shared similar tastes in music. Bands like The House Of Love, Spacemen 3, My Bloody Valentine, The Stone Roses, Loop. I’m sure you could fill in the blanks! It was mainly guitar music that we were heavily into but at the same time we also liked The Beatles and classic albums from that era. I naively thought what we were going to do was be like The Beatles where the music we made would be the most far out but also the most popular. So, my ambition was to get to the top of the charts while at the same time pushing the boundaries back as far as they can go. I guess we kind of got there with ‘Leave Them All Behind’ and Going Blank Again, but overall we just fell short commercially. We never spoke about it much but that was our aim from the beginning.
왠지 밴드 멤버들 모두 각각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 같은 질문이다. 우린 확실히 우리들에 대해서 꽤나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일단 우리는 커다란 인디 신의 기수였다. 우리는 모두 NME 독자였으며, 우리는 모두 비슷한 음악 취향을 공유했었다. The House Of Love, Spacemen 3, My Bloody Valentine, The Stone Roses, Loop 같은 밴드들 말이다. 아마 당신이 남은 빈 칸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주로 그 당시 우리가 굉장히 깊게 빠져 있었던 기타 음악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비틀즈와 그 당시 그 시대에 고전의 반열에 들었던 앨범들을 좋아했었다. 난 순진하게도 앞으로 우리가 하게 될 일들은 마치 비틀즈처럼 이루어질 것이며 앞으로 만들어 갈 우리 음악들은 가장 틀에 박히지 않으면서도 또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당시 내 야망은 갈 수 있는 한 최고로 멀리 음악적 경계를 확장시키는 동시에 차트의 가장 맨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Going Blank Again과 ‘Live Them All Behind’까지만 해도 그랬었던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는 상업적으로는 아주 살짝 부족했던 것 같다. 우린 그에 대해서 절대로 많이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사실 시작할 때부터 바로 그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DiS: I also remember even at your early shows you seemed to attract a large female following, which was quite unusual for guitar bands at that time. Did it ever occur to you that Ride would become poster boys of the indie scene back then?

필자의 기억으로는 심지어 당신의 초기 공연에서는 그 때 당시의 여느 기타 밴드들과는 달리,  당신이 많은 여성 팬 무리를 끌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라이드가 인디 신의 아이돌 밴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Andy Bell: I don’t know really. I guess that was Mark (Gardener), he was the pin-up of the indie world back then! It wasn’t something I thought about that much. What I thought you were going to say was there were a lot of Japanese kids at our early shows, because I remember there being loads of them at our gigs. The Japanese do tend to pick up on things really early. Liam and Noel said the same thing happened with Oasis. The first hardcore followings they got were with Japanese crowds.
사실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 그건 마크 (가드너) 였을텐데, 그가 그 당시의 인디계의 꽃돌이였으니까!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당신이 조금 전 말했던 건 내 생각에는 그 때 우리의 초기 공연에 있었던 일본인 애들 무리를 말하는 것 같은데, 왜냐하면 우리 공연에는 그런 애들이 많이 왔었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어떤 것을 굉장히 빠른 시간에 발굴해내는 경향이 있다. 리암과 노엘도 오아시스에서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말했었다. 그들이 처음 겪었던 광팬 무리들도 바로 일본인 관객들이었다.

DiS: It’s interesting you say that as there is quite a vibrant Japanese scene at present that’s seemingly in thrall to a late of late eighties and early nineties UK bands.
당신이 활기 넘치는 일본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치 그들이 후기 80년대와 초기 90년대의 영국 밴드들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것은 매우 흥미롭게 느껴지는데.
Andy Bell: The Japanese love shoegazing! And so do the Americans. I never realised what an effect the ’91 and ’92 American tours had. At the time we just treated it as another tour, yet now it seems like that kind of music has gone on to become so loved in America. Except that love wasn’t shown for a good five to ten years afterwards. And then suddenly I’d be going over there with Oasis to play and people would be coming up to me saying, “Forget Oasis, I’m into shoegazing!”
일본인은 슈게이징을 사랑한다! 그리고 미국인도 그렇다. 나는 91년과 92년의 (라이드) 미국 투어가 끼친 영향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 때 우리는 단지 그 투어를 다른 투어와 같이 취급했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음악은 지금껏 미국에서 사랑받아오면서 계속 이어져 온 것처럼 보인다. 그 이후 5에서 10여 년 간의 좋았던 시절에는 그 사랑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다음엔 갑자기 내가 오아시스와 함께 공연을 위해 그 곳으로 갔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오아시스는 잊어버려, 난 슈게이징에 빠졌어!”

DiS: Was there ever a time when you were in Oasis where you approached Liam or Noel with the intention of making a record in a similar vein to what you did with Ride?
혹시 당신이 오아시스에 있었을 적에 리암이나 노엘에게 당신이 라이드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음반을 만들어 볼 의향을 제안해 본 적 있었는가?
Andy Bell: Well, no not really, not in so many words, but I think Noel definitely appreciates all that music. He likes a lot of the bands from that era. I know back in ’93/’94 when Oasis first broke he was quoted in the press as saying his band were going to blow away all this shoegazing crap or whatever – not those exact words but that was the implication – yet that was never their ethos themselves. Noel definitely had a lot of time for me. He was a bigger shoegazer than me! He was always staring down at a pedal with Oasis, and he got a really good guitar sound from his pedals. It was right in that category with Nick McCabe or John Squire or myself, in that world of sound where we’re all heavy on delays and distortion. In a lot of ways, those first Oasis demos that I heard from Alan McGee reminded me of The Jesus & Mary Chain. Some of the songs off the first album like ‘Bring It On Down’, they weren’t singles but formed an integral part of the live set, to me anyway sounded like the Mary Chain. I mean, I don’t even know if they’d heard of The Jesus & Mary Chain at that point. They were just doing their own thing, but to me they had a lot of that element to them.
글쎄, 꼭 그러진 않았다, 꼭 그랬다고 말할 순 없지만서도, 그렇지만 내 생각에 노엘은 확실히 거의 모든 음악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그 시대에 나온 아주 많은 밴드들을 좋아한다. 과거 93/94년 오아시스가 막 태동할 무렵에 그는 언론에 대고 그의 밴드가 모든 슈게이징 어쩌구 하는 헛소리들을 다 날려버릴 것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도였다- 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건 절대 그들 자신의 행동 강령이 아니었다. 노엘은 확실히 나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나보다 더한 슈게이저였다! 그는 오아시스에서 언제나 페달을 내려다 보고 있었고, 그 페달로 정말로 좋은 기타 사운드를 냈었다. 사운드계 쪽으로 따지자면, 강하게 딜레이를 주고 디스토션을 거는 부류인 닉 맥케이브(※더 버브의 기타리스트)나 존 스콰이어 혹은 나와 비슷한 카테고리에 놓는 편이 더 맞았다. 내가 앨런 맥기로부터 들었던 초기 오아시스 데모 중 어떤 것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지저스 앤 메리체인을 연상시켰다. 첫 앨범에서 ‘Bring It On Down’ 같은 몇 가지 곡들을 꼽아보면, 그것들은 싱글은 아니었지만 라이브 셋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였었는데, 내게는 어쨌든 메리체인처럼 들렸었다. 무슨 뜻이냐면, 그 당시 그들이 지저스 앤 메리체인을 들어봤는지는 내가 알 길이 없다. 그들은 그냥 오아시스 그들 자신의 음악을 했을 뿐이었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들은 지저스 앤 메리체인의 많은 음악적 요소들을 갖고 있다.


DiS: I’d agree with that, something like ‘Fade Away’ for example sounds like the Mary Chain meets T-Rex or something.
전적으로 동의한다. ‘Fade Away’ 같은 곡은 지저스 앤 메리체인이 티-렉스나 아니면 어떤 다른 요소를 만난 느낌으로 들린다.
Andy Bell: Yeah, totally.
맞다, 그 말대로다.

DiS: You were all teenagers while recording Nowhere, which is quite an incredible achievement looking back. Since then it’s been cited as a landmark album, and by many publications as one of the greatest debuts ever made. Did it occur to you at the time you were in the process of creating something so important, pivotal even?
Nowhere 녹음할 당시만 해도 당신들은 모두 십대였을텐데, 뒤돌아보면 꽤나 엄청난 성과였다. 이후로 앨범은 기념비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었으며, 수많은 매체들을 통하여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들 가장 위대한 데뷔 앨범들 하나 되었다. 당시 당신은 무언가 굉장히 중요한 것을 창작하는 위치에 있었는가,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이 밴드의 중심이었나?
Andy Bell: No, not in the slightest! The actual process of recording that record was quite messy in places. I remember we had loads of problems getting the vocals right. They were out of tune and all over the place at times, which kind of makes it difficult for me to listen to now knowing all that. Although Nowhere is still my proudest achievement, more because it was our debut and we’d finally made an album with our names on it. It’s grown on me more in the years afterwards. I don’t think any of us quite realised what we’d achieved until many years later. We’d always strived for better things and I think after we finished recording it there was this nagging feeling that maybe we could have made a better record. Having done it, between ourselves, we kind of agreed that next time round we’d spend more time on the album, making it better. I think you can hear that deliberate effort on Going Blank Again to make it more polished.
아니,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사실 그 앨범을 녹음했던 실제 과정은 군데군데 구멍 투성이였다. 제대로 보컬을 올리는 데만도 우리가 엄청나게 애먹었었던 걸로 기억한다. 불협화음에다가 가끔씩 사방 팔방 흩어지기 일쑤였는데, 그걸 다 알고 있다보니 그 때문인지 지금은 그 앨범을 듣기가 힘들다. 아직도 Nowhere은 나의 자랑스러운 성과물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데뷔 앨범이었고 마침내 우리 이름을 걸고 앨범 하나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몇 년 간은 내가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중 누구도 몇 년 후 우리가 이뤄낼 것들에 대해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더 좋은 것에 굶주려 있었고 내 생각에는 우리가 녹음을 다 끝낸 후에도 그 느낌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더 좋은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작업을 마무리 지으면서, 우리는 우리끼리, 다음 번에는 앨범에 좀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좀 더 잘 만들어보자는 그런 것에 동의했다. 내 생각엔 Going Blank Again에서 그런 좀 더 세련되게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들을 들을 수 있다고 본다.

DiS: One thing that stood out for me with Nowhere was that having released three flawless four track EPs prior to its release, only one song out of the twelve – ‘Dreams Burn Down’ – made it onto the album. Was that a conscious decision not to include anything off your previous singles on the album?
필자가 Nowhere에서 눈에 띈다고 생각하는 점 한 가지는 그 이전에 발매했었던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4개 트랙짜리 EP 3개에 실렸던 곡들 중에서, 그 열 두 개 중 오직 단 한 곡 – ‘Dreams Burn Down’ – 만이 정규 앨범에 실렸다는 점이다. 정규 앨범에는 그 이전에 발매한 싱글 앨범의 어떤 곡도 수록하지 않을 것을 의식한 결정이었나?
Andy Bell: All that time we were touring the first three EPs I’d end up going back to my parents house in Oxford and immediately become chained to my four-track, writing these new songs. All the songs on Nowhere were written during that three or four month period while we were touring. I remember being shut in this Bed & Breakfast with the rest of the band after we’d played a gig somewhere, all four of us sharing one room. I started playing the four chords on my guitar that would later become ‘Vapour Trail’ and Mark just went, “Wow! That was pretty special.” And then Loz and Steve would start playing around with it and that’s pretty much how that song and the rest of Nowhere came about really. Almost like a happy accident at times!
그 당시 우리는 첫 EP 3개만 들고서 투어를 돌았었는데 결국 나중에 내가 옥스포드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서 새 곡들을 쓸 동안에는, 나는 갑자기 내가 썼었던 그 네 개 트랙에 얽매이고 말았다. Nowhere에 수록된 모든 곡들은 우리가 투어를 돌았던 그 3~4개월 동안에 작곡한 것이다. 내 기억에는 어딘가에서 공연을 끝내고 난 다음 나머지 밴드 멤버들과 같이 이런 Bed & Breakfast 같은 곳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 넷 모두 같은 방을 썼었다. 나는 내 기타로 나중에 ‘Vapour Trail’이 될 코드 네 개를 막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마크가 와서는 “우와! 그거 뭔가 좀 특별한데.” 그런 다음엔 로즈와 스티브가 와서 옆에서 연주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만든 것이 그 곡과 다른 Nowhere의 나머지 곡들이다. 때로는 행복한 우연 같은 게 찾아오기도 한다!

DiS: The following summer after the release of Nowhere you played the infamous Slough Festival with Slowdive and Chapterhouse among others, which seemed to be where the terms “shoegaze” and “scene that celebrates itself” emerged. Were you conscious of the backlash at the time and did it affect your approach to songwriting in any way?
Nowhere 발매된  여름에 당신은 유명하지 않은 페스티벌인Slough Festival에서 유독 슬로다이브와 챕터하우스 함께 어울리며 공연했는데, 마치 풍경은 “shoegase슈게이즈라는 단어와 함께씬을 자축하는 듯한모습이 드러나는 보였다. 당신은 당시의 어떤 반발감을 의식했었는가, 그리고  일이 어떤 식으로든 당신이 작곡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쳤는가?
Andy Bell: And we were all called the Thames Valley Scene as well. They’d been trying to find something to tag it with for a while, and because we were all friends that hung out together we became “the scene that celebrates itself” in their eyes. And then because we all looked down at our pedals it became “shoegazing”. It was meant to be a put-down at the time but now it’s become a genre! So I’ve decided to claim the shoegaze tag as having created my own genre.
우리도 우리 모두를 두고서 Thames Valley 씬이라고 부르고 다녔다. 그 사람들은 한동안 뭔가 꼬리표를 달만한 어떤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모두 서로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는 친구 사이였으니 그들이 보기엔 우리가 “씬을 자축”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언제나 우리 페달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슈게이징(※역주: ‘신발만 내려다 보고 있는’)“이란 말이 생겼다. 그 당시에는 전부 묶어놓고 무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단어였겠지만 이제 그 단어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그래서 난 이 슈게이징이란 꼬리표를 내 장르라고 부르고 다니기로 했다.

DiS: In the sleeve notes to Going Blank Again, you say that album was a deliberate attempt to withdraw from that whole scene.
Going Blank Again 슬리브 노트를 보면, 당신은 앨범에서 의도적으로 모든 음악 신에서 발자국 물러나는 것을 시도했다고 적어 놓았다.
Andy Bell: Yes, without a doubt. We saw ourselves as being far superior to all those other bands. I think any band that’s worth its salt genuinely believes they’re the best band in the world, and we were no different. As much as Ride were four very withdrawn and quiet individuals as people, we had that confidence, that belief, in ourselves. Songs like ‘Leave Them All Behind’ came purely from that belief to think bigger and think better and move forward rather than be trapped in what was happening already. We were never about trying to ape the sound of our previous records.
그렇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랬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른 모든 밴드들을 월등히 앞서게 된 것처럼 여겼다. 나는 어떤 밴드든 자기 값어치를 하는 밴드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밴드라고 여겼고, 우리도 그와 별 다를 게 없었다. 라이드가 아주 내성적이면서도 각각 개성있는 네 명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우리는 그런 자신감과, 그런 확신을, 스스로 갖고 있었다. ‘Leave Them All Behind’ 같은 곡들은 순전히, 이미 벌어진 일들에 묶여 있는 대신 그보다 좀 더 크게 생각하고 그보다 좀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전진하고자 하는 믿음으로부터 나왔다. 절대로 우리가 예전에 했던 음반을 흉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DiS: Wasn’t ‘Leave Them All Behind’ partly inspired by The Who’s ‘Won’t Get Fooled Again’?
‘Leave Them All Behind’는 부분적으로  후의 ‘Won’t Get Fooled Again’ 영향을 받은 곡이 아니었나?
Andy Bell: The keyboard beginning part, definitely, was us trying to recreate that epic sound of The Who from ‘Won’t Get Fooled Again’. It wasn’t about us copying it, more about getting a similar kind of feel. We ended up with a Hammond organ and I was holding down notes. Alan Moulder the producer had a gate going. I don’t know if you’re a musician or record producer, but in order to keep time they’ll sometimes use a click track generator. He put down a really fast click track and used it to somehow, cut the sound of the organ in and out of the studio so it became quite an intermittent rather than constant set of notes. We hadn’t actually done the keyboard part then either. It just seemed to magically overlay itself and fit perfectly.
키보드가 시작하는 부분이라면, 확실히, 그건 우리가 더 후의 ‘Won’t Get Fooled Again’의 전설적인 사운드를 재창조해보려는 시도였다. 그건 우리가 그 부분을 베끼려 했던 것도, 아니면 다른 어떤 비슷한 느낌을 주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린 그 부분을 Hammond 오르간으로 마무리했고 나는 노트를 한 키 내려놓았다. 프로듀서 Alan Moulder가 그 길을 터주었다. 당신이 뮤지션인지 음반 프로듀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때때로 그 사람들은 음악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클릭 트랙(※역주: 소리를 녹음할 때 BPM의 싱크를 맞추기 위해 넣는 일종의 비트)를 넣기도 한다. 그가 곡에 굉장히 빠른 클릭 트랙을 집어 넣고는 스튜디오 안팎에서 오르간 음을 잘라내고, 뭐 어떻게 해서 그걸 쓰게 됐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트라기보다는 간간히 잔잔하게 들리는 음처럼 만들어졌다. 사실 우린 키보드 파트도 제대로 끝내지 않았었다. 그건 그냥 마법처럼 스스로 겹쳐져서는 마치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DiS: How did you feel when ‘Leave Them All Behind’ gatecrashed the Top 10 singles chart?
‘Leave Them All Behind’ 싱글 차트 10위권 안으로 진입했을 때는 어떤 심정이었는가?
Andy Bell: Absolutely ecstatic! It was brilliant. You can’t beat that kind of moment because you’ve made a song that doesn’t compromise. It was a nine minutes long wall of sound with no edit whatsoever which meant no radio play either and it’s landed in the top ten! You do feel vindicated at that point.
당연히 열광했다! 정말 멋진 일이었다. 당신도 현실과 전혀 타협하지 않고 만든 곡이 그렇게 되었다면 그 같은 순간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그 곡은 편집 없이는 라디오 방송도 못 할 정도로 장장 9분에 걸친 기다란 사운드의 벽이나 마찬가지였는데 10위권 안에 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명예를 회복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DiS: Did you think it this point that the mainstream was there for the taking to be subverted by bands like Ride?
그 시점에서 당신은 라이드와 같은 밴드들이 메인스트림을 전복시켜 버렸다고 생각했는가?
Andy Bell: Oh yes, definitely. That was the whole idea. I think the success of ‘Leave Them All Behind’ was the high point of Ride’s career. But, the very strange thing about it is we followed it with what we thought would be our big breakthrough single, ‘Twisterella’, and it stalled at number 36 or whatever it got to. It never got played on the radio, and from that point onwards things started to tail off until eventually the band broke up. It’s a weird one, the rise and fall being so close together.
오 물론, 확실히 그랬다. 그게 모두의 의견이었다. ‘Leave Them All Behind’의 성공은 아마 라이드 사상 최고의 커리어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던 점은 우리가 그 뒤를 이어 가장 강력한 싱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Twisterella’에 대한 건데, 그 곡은 한 36위권 즈음에 머물렀다. 라디오에는 나오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 때부터 줄곧 앞을 향해 뻗어 나가던 것들이 결국 밴드가 해체하기 전까지 차츰 차츰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DiS: What’s most striking about Going Blank Again compared to its predecessor is its diversity. ‘Chrome Waves’ references Massive Attack’s ‘Unfinished Sympathy’ while ‘Grasshopper’ kind of pre-dates post-rock by a good five years or so. Would it be fair to say you’d already started moving in different directions musically from each other by that point?
Going Blank Again 이전의 것과 비교해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안에 있는 다양성이라고 있다. ‘Chrome Waves’매시브 어택의 ‘Unfinished Sympathy’ 참고한 곡인 반면 이전에 나왔던 ‘Grasshopper’ 5 정도는 앞서 나온 듯한 포스트 같은 종류의 곡이었다. 아무래도 시점에서부터 이미 서로 음악적으로 다른 방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나을까?
Andy Bell: We were, but at the same time we’d always been into a lot of different types of music anyway. The main difference between Going Blank Again and Nowhere was that on the second album, we were trying to incorporate as much of the music we were into as possible into what we were doing. We were still very much a core of four people at this time that felt the same about music so we’d share each other’s tastes. Steve was into a lot of electronic pop around this time. Around the time of ‘Leave Them All Behind’, Electronic had just released ‘Get The Message’, and Johnny Marr somehow made this sound (starts singing the riff) and I don’t know how he did it, but next time you play ‘Leave Them All Behind’ check out the lead guitar on it because I was trying to play that. It’s part of the intro and I guarantee now I’ve mentioned it you’ll notice what it is. Loz was into The Fall and a lot of hardcore indie. Mark was a big fan of 1980s indie, Echo & The Bunnymen and The Cure, that kind of thing. I was listening to a lot of sixties music, stuff like The Beatles, Stones, Byrds, Nick Drake. All of those were major influences on Going Blank Again, the Beach Boys as well. I should also mention that Steve’s number one love was reggae. That’s why there’s also a lot of dub on the record. In fact, going back to Nowhere, the only reason why the single version of ‘Dreams Burn Down’ is on the album is because McGee insisted. We had a dub version of ‘Dreams Burn Down’ – I think it may have been released on the Firing Blanks rarities compilation. Anyway, we were planning to put that on the album and McGee stopped it at the last minute. He made us put the single version on instead.
우린 그랬었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어쨌든 언제나 많은 다른 종류의 음악에 심취해왔었다. Nowhere과 Going Blank Again 사이의 주요 차이점을 들어보자면 두 번째 앨범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우리가 심취해있던 음악을 그 안에 담아 보려고 시도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시점에는 여전히 음악에 대해선 같은 느낌을 받는 네 명의 핵심이었고 그래서 서로의 취향을 공유해왔다. 그 당시 스티브는 일렉트로닉 팝 장르에 빠져 있었다. ‘Leave Them All Behind’를 만드는 동안에는, 일렉트로닉 쪽에서는 막 ‘Get The Message’가 나왔었고, 그리고 조니 마가 왠지 모르겠지만 이런 음을 만들었는데 (리프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며) 난 그가 어떻게 그걸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당신이 ‘Leave Them All Behind’를 들을 때 한 번 리드 기타 부분을 자세히 들어보면 알겠지만 내가 거기서 그 음을 연주하려고 했었다. 그 음은 인트로의 한 부분인데 지금 내가 개런티를 내고 있는 방금 말했던 그 부분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들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로즈는 The Fall과 아주 많은 종류의 하드코어 인디 음악을 좋아했었다. 마크는 1980년대 인디 음악의 엄청난 팬이었는데, 에코 앤 더 버니멘이라든지 더 큐어 같은, 뭐 그런 종류였다. 나는 60년대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Byrds, Nick Drake 같은 음악들이었다. 이 모두가 Going Blank Again에 주요하게 영향을 준 것들이었고, 또 비치 보이즈도 그랬다. 또 한 가지 내가 말해두고 싶은 건 스티브가 가장 사랑했던 건 바로 레게 장르였다는 점이다. 그게 바로 음악에 아주 많은 dub(더브)가 들어가게 된 이유다. 사실, Nowhere 쪽으로 돌아가보면, ‘Dreams Burn Down’의 싱글 버전이 앨범에 실리게 된 유일한 이유는 맥기가 그렇게 하도록 주장했기 때문이다. 우린 ‘Dreams Burn Down’의 더브 버전을 갖고 있다 – 아마도 희귀 음원 컴필레이션 음반인 Firing Blanks에 실려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는 그 버전을 앨범에 넣으려고 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맥기가 우리를 막아섰다. 그 대신 앨범에 싱글 버전을 넣도록 했다.

DiS: The anniversary edition of Going Blank Again also features a live DVD of your show at Brixton Academy in March 1992. Do you remember much about that night? Why was that show included on the bonus disc rather than any of your others?
Going Blank Again 20주년 기념반에는 1992 3 Brixton Academy에서 했던 라이브 공연 DVD 실려있다. 보너스 디스크에 유독 공연을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Andy Bell: We had quite a few of our gigs recorded, especially around that time, but this was the one we chose because there’d been a lot of requests from fans over the years to put that show out on DVD. It originally came out on VHS format in 1992. There are a lot of good live recordings in the archives but this is the one most people tend to talk about.
우리는 그다지 많은 공연 녹음 영상을 갖고 있지 않은데, 특히나 그 시기 동안이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공연을 선택했던 이유는 수년 간 팬들로부터 이 공연을 DVD로 만들어달라는 엄청난 요청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원래 이 영상은 1992년에 VHS 방식으로 찍혀서 나온 것이다. 이보다 좋은 라이브 영상들이 더 많이 보관되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곤 하는 공연은 바로 이 때였다.

DiS: Does it stand out for you as one of your favourite shows with the band?
그 공연이 당신 눈에 띄었던 건 밴드와 함께했던 공연들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인가?
Andy Bell: I guess it represents the band at their peak live. We did two nights at Brixton on that tour and one of them was filmed, and if I’m being honest, we never got any bigger than that. Brixton was as good as it got.
내 생각엔 그 공연이 밴드의 라이브의 정점을 대표한다고 본다. 그 투어에서 우린 Brixton에서 이틀을 공연했고 그 중 하나가 촬영되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커질 수 없었다. Brixton 공연은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DiS: Your third album Carnival Of Lightwasn’t as well received by fans or critics as your previous records. Looking back, do you regret that record now or do you still stand by it?
세번째 앨범이었던 Carnival Of Light는 그 이전 앨범들처럼 팬들과 평론가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 때를 돌아보자면, 지금은 그 앨범에 대해 후회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가?
Andy Bell: I try not to have regrets about it because we were always a band that did whatever we wanted. If we were a band making that record now, things would be different, of course they would. You can’t make an album where your songs are on one side and Mark’s songs are on the other. You can’t behave like that, it’s just stupid. You’ve got to talk, work through any differences you both may have. You can’t just go on and do something out of spite. It was all going a bit sour around that time and things were allowed to happen. I don’t want to say I regret it because the story of Ride is pretty perfect in a way. We did kind of swing wildly between albums. I mean, the first album is the classic debut then we swung towards a cleaner sound and lose the shoegazing tag on Going Blank Again. Then we tried to become a classic rock band like Pink Floyd or The Byrds on Carnival Of Light. From there we decided to make an album live in the studio with Tarantula. Then you had all the personal politics going on with that .
그 앨범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왔던 밴드였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요즘에 음반을 만드는 밴드였더라면, 당연한 소리지만, 내용물은 달라졌을 것이다. 내 곡은 어느 한 쪽 방향에 있는데 마크의 곡은 다른 반대 쪽에 있고 그런 식이면 앨범을 만들 수 없다.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순 없다, 그건 멍청한 짓이다. 서로가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차이점이 있다면 그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한다. 그냥 무조건 가서 악의적으로 뭔가를 해버리고 이럴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 때 즈음에는 모든 것들이 틀어져갔고 그렇게 될 만 했었다. 나는 라이드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는 완벽했다고 보기 때문에 거기에 대고 후회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앨범을 만드는 동안에는 거칠게 방향을 바꾸곤 했었다. 무슨 말이냐면, 첫번째 앨범은 전형적인 데뷔 앨범이고 그 다음 Going Blank Again으로 가면서부터는 좀 더 깨끗한 사운드를 지향하고 슈게이징 꼬리표를 떼버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Carnival Of Light에서는 핑크 플로이드라든지 The Byrds 같은 좀 더 클래식한 록 밴드가 되려고 노력했었다. 그 시점에서부터 우리는 Tarantula를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거기에 맞춰서 당신의 모든 개인적인 견해들을 가지면 된다.

DiS: With regards to Tarantula, songs like ‘Dead Man’ almost sound like a blueprint for the first Hurricane #1 record. Were you already planning your next project by that point?
Tarantula 관련해 말해보자면, ‘Dead Man’ 같은 곡은 거의 마치 허리케인 #1 앨범을 위한 청사진처럼 느껴진다. 시점에서 이미 다음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었는가?
Andy Bell: No, not at all. Tarantula was very much a Ride album. The only time it stopped being right was when we turned up at this meeting midway through the album sessions, and Mark announced that he was leaving the band. The Hurricane #1 songs were written soon after that. I think it’s fair to say by that point I had gone very sixties! I always had been in a way. ‘Seagull’ off the first album was an attempt to rewrite ‘A Taste Of Honey’. You should play them both one after the other; they’re basically the same song. The Beatles were always the touchstones for me. Even when I was the king of shoegazing!
아니, 전혀 그러지 않았다. Tarantula는 몹시 라이드스러운 앨범이었다.  그 앨범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된 유일한 순간은 우리가 앨범 세션을 거치는 과정에서 갑자기 미팅을 가졌을 때였는데, 마크가 그 자리에서 밴드를 떠난다고 선언했다. 허리케인 #1의 곡들은 그 이후에 작곡된 것이다. 내 생각에 그 당시의 나는 굉장히 60년대스럽게 가고 있었다고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난 항상 어느 정도는 그래왔었다. 첫 앨범의 ‘Seagull’은 ‘A Taste Of Honey’를 다시 써보려고 시도한 곡이었다. 그 곡 다음에 다른 하나를 번갈아 동시에 연주해보라; 그 둘은 기본적으로 같은 곡이다. 비틀즈는 언제나 나에게 있어서 기준점이 되는 밴드였다. 심지어 내가 슈게이징의 제왕이었을 적에도 말이다!

DiS: After Hurricane #1 finished, you then got asked to join Oasis, who were arguably the biggest band in the UK and possibly the world at that moment in time. Was it quite a daunting experience at first?
허리케인 #1이 끝난 이후, 당신은 그 즈음 한 때 세계에서 가장 클 수 있었고 영국에서도 분명히 가장 거대했던 밴드 오아시스에게서 가입 제안을 받았었다. 처음에는 좀 주눅 들지 않았었나?
Andy Bell: No, I wouldn’t call it daunting. Hurricane #1 kind of finished in a… It was never really right, that band. It was basically just me trying to keep busy. When I started the second album, I hit a pretty big writer’s block that I’d been fighting for a while. I managed to finish the record but it seemed like too much hard work to carry on. I didn’t really want to if I’m honest. I think at that point I’d lost all impetus as a songwriter, so I quit the band and moved to Sweden. We’d just had a child as well, my first daughter, and at that point I kind of retired from music. That was me done, aged 29. I’d given all my guitars away and had no intention of making music again, when a call came through from an old friend of mine that worked in the Oasis office. She told me I was about to get a call from Noel Gallagher asking if I wanted to join the band, and sure enough half an hour later he’s on the phone asking if I want to play bass with them. I decided to fly back to England and meet them, still not really knowing what I wanted to do. But then when I met them we instantly bonded and felt at home so decided to give it a go.
그렇지 않았다, 그 때를 ‘주눅 들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허리케인 #1은 다 끝나가는 밴드였다… 그 밴드는 정말로,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저 나를 바쁘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두번째 앨범을 시작할 때, 난 작곡 슬럼프에 빠져서 한동안 거기에 씨름하고 있었다. 간신히 녹음을 마무리 짓긴 했지만 그대로 계속 해나가기엔 너무 힘에 부쳤던 것 같다. 솔직히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 당시 나는 작곡가로서의 원동력을 전부 잃어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밴드를 그만두고 스웨덴으로 이사했다. 우리 사이에서 첫째 딸이, 그 무렵에 태어났었고, 그리고 그 당시 나는 음악에 있어서는 은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29살의, 내 모습이었다. 오아시스 사무실에서 일하던 내 오랜 친구로부터 그 전화를 받았을 무렵에는, 갖고 있던 기타들은 전부 다 누구한테 줘버린 뒤였고 작곡을 다시 시작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녀가 내게 말하길 노엘 갤러거가 내게 밴드에 가입할 생각이 있는지 여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할 것이라 했고, 아니나 다를까 30분 뒤에 그가 전화를 바꿔서는 내게 베이스를 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난 영국으로 다시 날아가 그들을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여전히 내가 정말로 뭘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만나자마자 곧 우리 사이에는 유대감이 생겼고 집에 돌아가서는 한번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DiS: How did working with Noel and Liam compare with what you’d been used to in the past? Did it seem strange going from being the main songwriter and focal point with both Ride and Hurricane #1 to being the bass player in what was essentially their band?
과거 당신이 해왔던 일들과 비교해 봤을 때 노엘, 리암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어땠는가? 라이드와 허리케인 #1에서 메인 작곡가와 더불어 중심점을 도맡아 해오다가 그들의 밴드로 와서는 기본적으론 그냥 베이스 연주자가 되버린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는가?
Andy Bell: Working with the Gallaghers was brilliant. They’re both very different yet in some ways quite similar, and also very appreciative for what I was bringing to their band. I wasn’t bringing much other than playing bass on their songs to start with, but they knew and liked what I’d done before.
갤러거 형제와 같이 일하는 건 아주 좋았다. 그들은 어떤 점에서는 서로 비슷한 듯 달랐으며, 또 내가 그들 밴드에 가져온 것들에 대해서 매우 고마워했다. 처음에는 곡에 맞춰 베이스를 연주하는 것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알고 있었고 또 좋아해주었다.

DiS: Your arrival seemed to coincide with the band releasing possibly their best two records since Definitely Maybe and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in Heathen Chemistry and Don’t Believe The Truth.
당신이 정착하면서부터 밴드는 DM과 MG 이후로 Heathen Chemistry와 Don’t Believe The Truth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걸작 앨범 두 개를 발표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인다.
Andy Bell: I’m a big fan of Don’t Believe The Truth. It was definitely the best record Oasis made during the time I was with them.
나는 Don’t Believe The Truth의 열렬한 팬이다. 그 앨범은 확실히 내가 오아시스에 있을 동안에 만들었던 가장 뛰어난 오아시스 앨범이었다.

DiS: Do you ever see Noel and Liam burying their differences, reforming Oasis and working together again?
당신은 노엘과 리암이 앞으로 서로의 의견 차이를 덮어두고, 오아시스를 재결성해 또 다시 함께할 것이라고 보는가?
Andy Bell: I’d love it to happen. I think that life’s too short for it not to happen. But, in reality, do I see it happening? At this point, no I don’t. The matter rests entirely with the two brothers. It probably should happen at some point but if they can’t make it happen, no one should force them to.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될 것 같으냐고? 현 시점에서는, 아닐 것 같다. 전적으로 그 두 형제에게 달려있는 문제다. 아마도 언젠가 어느 시점이 되면 재결합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DiS: Obviously when Oasis split up, Noel went his own way and the rest of you formed Beady Eye. What made you choose to work with Liam rather than Noel? Was it something that just fell into place?
오아시스가 확실하게 해체를 맞이했을 때, 노엘은 자신의 길을 선택했고 당신을 포함한 나머지는 비디 아이를 결성했다. 같이 작업하고자 하는 상대로서 노엘보다 리암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맞아 떨어지게 된 어떤 계기가 있는가?
Andy Bell: It just fell into place like that really. When Mark decided to leave Ride we initially thought about carrying on. But because it had been the original four, and then it would have been three, we just felt it would have been impossible to carry it on. But then who knows what would have happened in a parallel universe? We could have just carried on with what we were doing and wait to see if Mark came back but that never happens. You tend to make snap decisions in the moment of crisis I guess, and then you have to live with them. Your life is then laid out in a certain way as a result. That’s what happens; in certain times of your life you have to go with one big choice or the other.
그냥 실제로 그렇게 된 것 뿐이다. 마크가 라이드를 떠나기로 결심했을 적에 우리는 처음에는 그 없이 밴드를 유지하려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쭉 오리지널 멤버가 넷이었다가, 그 때 이후로는 셋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대로 밴드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그 때 평행 세계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그저 우리 할 일이나 하면서 밴드를 계속 유지하며 마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사람은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면 순간적인 결정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그 이후로는 그냥 그 선택을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 바로 그 결과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큰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DiS: I guess it’s better to look forwards rather than keep wondering what might have been.
필자 생각에는 어쩌면 이뤄졌을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눈 앞을 보는 편이 더 나은 일인 것 같다.
Andy Bell: The brave choice is always go forward.
용감한 선택은 언제나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DiS: You’ve left quite a legacy in your various back catalogues, as well as having influenced a generation of musicians and bands. Are there any that you’re particularly proud to have cite you as being an inspiration?
당신은 명실공히 뮤지션과 밴드 세대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활동을 해오면서, 꽤 많은 유산들을 남겨왔다. 당신이 영향을 받은 것들 중에서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을 들어본다면?
Andy Bell: Anyone who mentions anything I’ve done as being an influence is alright by me. A lot of people tell me this when I’m being interviewed and then when I read the interview they only tend to mention Loveless! It’s a recurring thing for me which is cool because Loveless is one of the greatest records ever created, and if that record raises awareness towards a certain era or genre of music that’s fine by me. A lot of bands who are successful these days cite a lot of early nineties guitar music as being influential; Coldplay and The Horrors being two that spring to mind; and we fit right into that, so that’s got to be a good thing.
내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 어떤 것이든 내게는 다 맞는 소리다. 내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말하곤 하는데 막상 인터뷰를 읽어보면 사람들은 오직 Loveless만 언급하곤 한다! 내가 항상 멋지다고 말하곤 하는 게 바로 이 앨범이긴 하지만 왜냐하면 Loveless는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앨범 중 가장 위대한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시대나 음악 장르의 인식을 높이는 앨범이라면 난 다 괜찮다고 본다. 요즘 들어 성공하는 수많은 밴드들은 90년대 초의 기타 음악에 영향을 받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콜드플레이와 더 호러스 이 두 밴드가 갑자기 떠오르는데; 그리고 우리도 거기에 들어맞고, 그래서 좋은 것 같다.

DiS: Bearing in mind the obvious impact of Ride’s music today, I guess the final question has to be do you ever see the four of you getting back together and playing one more time?
오늘날 라이드의 음악이 분명한 영향력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 본다면, 아무래도 마지막 질문은 당신들 네 명(※라이드)이 언젠가 다시 만나 함께 연주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한 질문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Andy Bell: Well, never say never. We’re good friends now. We get together once a year and just have a few pints and whatever. We’re all pretty busy with what we’re doing, but personally, it would be a shame if we never got to play those songs one more time.
글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곤 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지금 좋은 친구 사이로 남아있다. 우린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서는 같이 술을 마시거나 그러고 놀고는 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하는 일들 때문에 늘 조금씩 바쁘지만,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시 한 번 그 곡들을 연주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후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