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H.com.au 2014.01.24] 앤디 벨 인터뷰

Don’t look back in anger: Liam Gallagher’s Beady Eye open to playing Oasis songs

Being here now: Beady Eye joined the Big Day Out tour after Blur dramatically pulled out. —

지금 여기 오다: 비디 아이가 블러의 극적인 퇴장 이후 Big Day Out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You can only picture the smile that must have spread across Liam Gallagher’s face. One minute he was rehearsing with Beady Eye, the band he formed with fellow erstwhile Oasis members Gem Archer, Andy Bell and Chris Sharrock, after big brother Noel took his bat and ball and went home in 2009. The next, Beady Eye were being asked to help save the Big Day Out after Oasis’ one-time Britpop nemesis Blur had pulled out.

리암 갤러거의 표정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상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2009년 그의 빅 브라더 노엘이 짐 싸고 집에 가버린 그 날 이후, 지금까지의 동료들이었던 오아시스 멤버인 겜 아처, 앤디 벨 그리고 크리스 샤록과 함께 결성한, 비디 아이와 함게 리허설 하는 순간에만 말이다. 다음으로, 비디 아이는 한 때 오아시스의 브릿팝 강적이었던 블러가 공연을 취소한 이후 Big Day Out 페스티벌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As it happens, that wasn’t exactly how the band saw it go down. ”Blur never came into it,” Archer says. ”Someone said, ‘What about going to Australia?’ and we all went, ‘Yes’.”

공교롭게도, 그것은 밴드가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블러 때문에 온 건 절대 아니다.” 아처가 말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호주에 가보는 건 어때?’ 그래서 우린 모두, ‘알았다’고 했을 뿐이다.”

But you can bet Liam had a smirk to himself when he did find out.

그렇지만 분명 리암이라면 그가 갈 곳을 알아차렸을 때 속으로 히죽거리지 않았을지.
Anger: Liam Gallagher.
The younger Gallagher has been laughing all the way to the bank, countless magazine covers and the top of many a chart ever since Noel, with his then seemingly endless arsenal of swaggering rock’n’roll anthems, took charge of Liam’s fledgling outfit and transformed it by the mid-1990s into the Oasis millions know and love.
창고 속 막내 갤러거는 언제나 웃고 있다. 수많은 잡지 표지들을 장식하고 노엘과 함께한 이후에는, 그 당시 보기에는 끝이 없는 그의 로큰롤 떼창곡의 향연과 함께 많은 차트를 석권했으며, 리암만의 신출내기 옷차림으로 1990년 중반 많은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알게 되고 또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Yet when Noel walked out on their final incarnation five years ago, he must have known any future project of his would pale in comparison with Oasis for one key reason. He may have been the one with the tried and tested songwriting talent but Liam was the truly irreplaceable one, thanks to his rare combination of charisma, attitude and (not always, but often) vocal heroics.

노엘이 그들의 마지막 삶에서 걸어 나오기 5년 전만이라도, 그는 단 한 가지 핵심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그만의 미래 계획을 하나라도 알아놨어야 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작곡 재능을 시도해보고 시험해 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리암은 정말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그의 카리스마, 애티튜드 그리고 (언제나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뛰어난 보컬이 빚어내는 그의 독특함 때문이었다.
”Liam’s stage vibe is definitely based on an antagonistic sort of vibe,” says Bell, who switched from playing bass for Oasis to guitar for Beady Eye. ”There’s an anger to him on stage, which makes him a great frontman.”

“리암의 무대 분위기는 분명히 어느 정도는 적대적인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 벨이 말했다, 이 자는 오아시스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다 비디 아이에서는 기타로 바꾸었다. “무대에서는 그에게서 분노가 느껴지는데, 그것이야말로 바로 그를 최고의 프론트맨으로 만드는 것이다.”

Fellow Beady Eye guitarist Archer describes Liam as ”fearless with how he approaches any night”.

동료 비디 아이 기타리스트인 아처는 리암을 “그 어떤 날 밤의 공연이든 두려움이 없는”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It is why the average Britpop fan who didn’t demand a Blur-related refund for the Big Day Out will want at least to have a quick look at Beady Eye’s set. Well, that and the fact that, now they have established themselves with two albums of their own – 2011’s occasionally exhilarating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and last year’s improved and more adventurous follow-up BE – they are open to playing Oasis songs.

이것이 바로 블러 취소 이유로 Big Day Out 환불을 받지 않은 보통의 브릿팝 팬이 적어도 비디 아이의 셋리스트를 통해서 보고자 하는 것들이다. 뭐, 그도 그렇고 사실, 지금 그들은 두 개의 앨범을 통해 그들 나름의 정체성을 확립해놓은 상태로 – 2011년의 신바람 나는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과 작년에 발매한 좀 더 발전되고 훨씬 더 모험적인 두번째 앨범 BE – 그들은 오아시스 곡을 연주하는 것에도 열려 있다.

”I have a feeling people are just going, ‘F— Beady Eye, we want Oasis back’,” Liam told NME in June. ”I feel sometimes people are boycotting Beady Eye because they think the quicker I get the needle with it, the sooner I’ll be going round knocking on Noel’s door. They’ve got it all wrong.”

“나는 사람들이 그저, ‘좆-까라 비디 아이, 우린 오아시스를 원한다’는 느낌이 든다.” 6월 NME 인터뷰에서 리암이 한 말이다. “난 사람들이 그저 내가 더 빨리 이 일로 열받을 수록, 더 머잖아 내가 노엘의 문을 두드리고 다닐 거라는 생각에 비디 아이를 보이콧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 사람들은 다 틀렸다.”

”It felt like a natural thing to do,” Bell says. ”From the beginning we kinda had a word with ourselves and said, ‘Well, if we do that [play Oasis songs] right off the bat, this is gonna be seen as kinda not separate enough from Oasis’.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벨이 말했다. “시작부터 우리들은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이런 식으로 말해왔다, ‘음, 만약 우리가 이걸 [오아시스 곡을 연주하는 걸] 곧바로 한다면, 우린 오아시스하고 별 다를 바 없이 보이게 될 거야.'”

”We’ve thrown a couple in now because … it’s not like we’ve become massive all around the world as Beady Eye. We’re getting there, but I think a lot of people that come to see us do wanna hear Oasis songs. We think if we give them a couple of treats, y’know, they’ll keep listening to Beady Eye.”

“우리가 지금 오아시스 곡들 몇 개를 연주하게 된 이유는… 이제 우리가 비디 아이로서 전 세계에서 유명해졌다는 건 아니다. 우린 그렇게 되겠지만, 그렇지만 내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오아시스 곡을 연주하는 것을 보기 위해 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계속 그렇게 곡들 몇개를 연주한다면, 아마, 그들도 비디 아이를 계속 들어주지 않을까.”

Still, hard acts to follow don’t come much more difficult than Oasis. You can’t help but wonder why the four members other than Noel decided to continue together in what was inevitably going to be a similar vein but without the skills of their principal songwriter.

그래도, 오아시스 때보다 더 이겨내기 어려운 일들은 오지 않는다. 도움은 안 되겠지만 과연 도대체 왜, 이 노엘을 제외한 네 멤버들이 필연적이다시피 비슷한 태도로, 그들의 주요 작곡가가 갖고 있었던 기량 없이도 다 같이 함께 하고자 했는지가 궁금하지 않은가.

”The ’09 Oasis tour, which ended up with us breaking up, was the best we ever sounded live,” Bell explains. ”We basically wanted to preserve that kind of inter-band chemistry.

“09년의 오아시스 투어, 해체로 끝난 그 투어가, 우리가 했었던 가장 최고의 라이브였다,” 벨이 설명한다. “우린 기본적으로 그런 종류의 밴드-내면의 교감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Obviously Noel was gone, so there was a big part missing, but the rest of us were still on that stage and we wanted to keep that same musical feeling. There was no, like, ‘Let’s change anything’. It was just forward momentum – ‘Let’s keep going’ – which powered us through the first album.”

“분명히 노엘이 떠난 것은 맞고, 그것은 큰 손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은 우리들은 여전히 스테이지에 머물러 있었고 우리는 계속 그런 음악적 느낌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것은 그렇다고 해서, 무슨, ‘자 이제 모든 것을 바꾸자’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추진력이었다 – ‘계속 해 보자’는 –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첫 앨범을 낼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Do Beady Eye perhaps feel like they have something to prove? ”No … we’re still driven to make music,” Bell says. ”It’s not about proving, really. It’s more just about having that drive to keep on playing.

아마도 비디 아이는 뭔가 증명해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일까? “아니… 우리는 여전히 음악을 만들어 나가고 있고,” 벨이 말했다. “우릴 증명하고자 하는 거냐하면, 정말로 아니다. 오히려 계속 연주할 수 있도록 우리들을 몰아나가는 것에 가깝다.”

“You always want more, you always want to be bigger, you always do want that top spot but you’ve gotta be realistic sometimes. And if it ain’t happening, then is it really the end of the world? I don’t think so. It’s still good to be playing music. It’s still good to be, y’know, earning a living from it.”

“언제나 더 바라고, 더 커지고 싶고,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르고 싶지만 가끔씩은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만약 그리 되지 않는다면, 그럼 그걸로 정말 세상이 끝나는 걸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음악을 연주하기는 좋다. 지금도 여전히, 알다시피, 먹고 사는 데에는 충분하다.”

There is, of course, one way that they could all earn a lot of money playing music and make a lot of people very happy: by getting Oasis back together. But this won’t happen until the Gallagher brothers start talking to each other again and Bell can’t confirm if there is any truth to a recent rumour that they are doing so.

그렇다면, 물론, 그들이 음악을 연주해 엄청난 돈을 벌고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 오아시스를 재결합시키는 것 말다. 그러나 이런 일은 갤러거 형제가 다시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벨 또한 그들이 할 것인지에 대한 최근의 루머에 대한 진실을 확인해주지는 못 한다.

”I haven’t heard anything about that, but if that’s the case then that’s great,” he says. ”I’d be happy if they did bury the hatchet – y’know, just on a personal level it’d be a good thing.”

“그런 일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들어본 적 없지만, 만약 그럴 일이 있다면 아주 좋을 것이다.” 그가 말했다. “그들이 화해를 한다면 나로서도 좋은 일이다 – 알다시피, 오로지 개인적인 측면에서 좋은 일이라는 말이다.”

”There’s unfinished business there,” Liam told NME. ”People ask would I get Oasis back together. I’d do it for nowt. But if someone’s going to drop a load of f—ing money, I’d do it for that, too.”

“거기엔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남아있지만,” NME에서 리암은 말했다. “사람들이 내게 오아시스를 재결합할 생각이 있냐고들 물어본다. 난 대가 없이도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누가 존-나게 많은 돈을 가져온다면, 뭐 그래도 하지 않을까.”

– with Peter Vincent

Beady Eye play the Big Day Out, Flemington Racecouse, today and in Sydney on Sunday.

[themusic.com.au 2014.01.22] 앤디 벨 인터뷰

Beady EyeMusic
SECOND BITE OF THE APPLE
“The spin on Noel versus Liam is basically the hook that brings people in to read about the band.” Guitarist Andy Bell reassures Kitt Di Camillothat Beady Eye welcome Oasis comparisons if it means more sets of ears hear their music.
“노엘 대 리암의 상황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이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읽도록 이끌어준다.” 기타리스트 앤디 벨은 Kitt Di Camillo를 안심시키면서 비디 아이는 그들의 음악을 더 듣고자 하는 의미라면 오아시스와의 비교는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On its release in early 2011, the debut album by Beady Eye was met with mixed reviews from critics but peaked at number three in the UK charts. A roaring success for most rock bands, it was a slightly underwhelming result for a group born from the demise of the British rock institution that was Oasis. In the aftermath of the Gallagher brothers’ suitably explosive bust-up, it was Liam who took the first step towards a new musical beginning in 2009, joining forces with fellow Oasis members Gem Archer, Andy Bell and Chris Sharrock to create Beady Eye.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was released 18 months later, a debut album that not so much dominated the airwaves as provided a gentle reminder that they were still around.

2011년 초에 발매된, 비디 아이의 데뷰 앨범은 평단으로부터 엇갈린 반응을 받았지만 영국 차트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록밴드의 울부짖는 듯한 성공에 비하면, 브리티시 록의 상징인 오아시스의 종말로부터 태어난 밴드가 낳은 결과치곤 전혀 감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갤러거 형제에게 어울리는 폭발적인 결별의 후폭풍으로, 2009년 새로운 음악을 향한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은 리암이었으며, 동료 오아시스 멤버였던 겜 아처, 앤디 벨, 그리고 크리스 샤록과 협력해 비디 아이를 만들었다.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은 그로부터 18개월 이후에 발매되었으며, 이 데뷰 앨범은 그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조용히 상기시켰던 만큼 그다지 많은 전파를 타지는 못 했다.

Which made its follow-up all the more important. Teaming up with TV On The Radio member and renowned indie-rock producer Dave Sitek, the whimsical pop and ‘60s rock’n’roll of their debut was moved aside for darker psychedelia and a penchant for experimentation. Despite various quotes from Gallagher suggesting he’d quit music altogether if it failed, there were hints of self-doubt seeping from the Beady Eye camp.

그것이 바로 두번째 앨범이 그토록 중요해진 이유였다. TV On The Radio의 멤버이자 명망 있는 인디-록 프로듀서 데이브 시텍과의 협업은, 기묘한 팝이자 60년대 풍 로큰롤이었던 그들의 데뷰를 좀 더 어두운 사이키델리아와 실험적 기호로 이끌었다. 앞으로 앨범이 망하면 갤러거가 완전히 음악을 그만둘 것이라는 둥 하는 말들의 여러가지 인용들에도 불구하고, 자가 회의는 바로 비디 아이 캠프로부터 스며나온 것이라는 힌트들이 여럿 존재했다.

A founding member of Oxford shoegazers Ride, Bell didn’t feel any pressure. “I just was excited about the prospect of going into the studio with Dave Sitek,” assures the laidback guitarist. “That was a massive incentive for me just to be in the studio: that for me is like a reward in itself. So I don’t feel any pressure in the studio, especially when you have such a good session. Pressure is the enemy of good music.”

옥스포드의 슈게이징 밴드 라이드의 설립 멤버인, 벨은 그 어떤 압박감도 느끼지 않았다. “난 그저 데이브 시텍의 스튜디오로 갔을 때의 전망에 흥분해 있었다,” 이 느긋한 기타리스트가 장담한다. “그냥 스튜디오에 가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엄청난 인센티브였다: 그 자체로도 어떤 보상과도 같았다. 그래서 스튜디오에 가는 것에는 그 어떤 부담도 없었고, 특히 좋은 세션과 함께 할 수 있을 때에 그랬다. 압박감은 좋은 음악에게는 적이니까.”

With second album BE released to solid reviews in June last year, Bell’s enthusiasm was clearly warranted. Songs such as Soul Love and Don’t Brother Me should be Oasis-aping anthems, but instead tread a darker, cosmic place. Flick Of The Finger is the best song they’ve written, but doesn’t contain a chorus and is dominated by a horn section. Sitek’s touch can be felt all over it, and takes the ‘60s-obsessed rockers into much-needed new territory.

작년 6월 알찬 리뷰를 받은 두번째 앨범 BE를 통해, 벨의 열정만큼은 분명하게 보증되었다. Soul Love  Don’t Brother Me 같은 곡들은 오아시스 흉내를 낸 떼창곡이겠지만, 그 대신 좀 더 어둡고, 우주와도 같은 공간을 디딘다. Flick Of The Finger는 그들이 쓴 곡들 중 최고의 곡으로, 코러스가 없는 대신 호른 세션으로 장악되었다. 시텍의 손길은 그 어느 곳에서든 느껴지며, 60년대-중독의 로커들을 반드시 가야 할 새로운 영역으로 데려다 놓았다.

“I still think it’s pop music. It’s still listenable, but it’s just more interesting and more different sonically than we would’ve done if we had gone and done it ourselves. They’re very visual sounds; they really help. Guitarists especially, ‘cause you can get stuck in a guitar thing where everything is just two guitars, bass, drums you rehearse it, it sounds great, it kinda rocks on that level of things rocking, and if you stop there and record it and put it out, you end up with something pretty good like our first album.

“난 여전히 이것이 팝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귀에 잘 박히는데다, 좀 더 흥미롭고 음속적으로 좀 더 다른 면이 있다. 무척이나 시각적인 사운드인데; 이건 정말로 도움이 된다. 기타리스트들은 특히 그런데, 왜냐면 모든 것이 그저 기타 두 개에, 베이스, 드럼인 곳에서는 그저 기타 같은 종류에만 갇혀 있게 되기 때문이다  리허설을 해보면, 정말 엄청나게 들리고, 무슨 약간 로킹함의 경지에 있는 그런 록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거기서 멈춰서 녹음을 한 다음 들어보면, 우리의 첫 앨범 같은 그런 조금 더 좋은 것 정도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But] if at that point you take a left turn or a right turn and just start going, ‘Well let’s throw all that out, we all know that we can play, we all know that we can do this down-a-sort-of-route one. But let’s take a detour’. That’s something that we haven’t done. We didn’t do it much in Oasis and we haven’t done it much in Beady Eye until this point. So it’s a good thing to do.”

“[그러나] 그 시점이 오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꺾어서 그냥 이렇게 시작해보는 것이다, ‘그럼 어디 한 번 다 치워보실까, 우린 연주하는 법도 다 알고, 우리가 늘-하던-방식-그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다 알지. 그치만 한 번 우회해보자고’ 그게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오아시스에서도 그리 많이 해보진 않았고 비디 아이에서도 그 지점까지 많이 가지는 못 했다. 그러니 지금 하기에 좋은 것이다.”

Since the day they formed, Beady Eye have been dogged by comparisons to Oasis. Outside of the diehard fans, the general public tend to side with one Gallagher brother over the other, most often the well-spoken Noel over the paparazzi-punching Liam. The upcoming Big Day Out tour will be the first time Liam and co have visited our shores since Oasis’ 2005 Don’t Believe The Truth tour. With former Kasabian bassist Jay Mehler now a permanent member, the five-piece are in peak form.

그들이 결성된 이후로, 비디 아이는 오아시스와의 비교에 시달려왔다. 덕후 팬들 바깥에서는, 일반적인 대중들은 한 쪽 갤러거 형제의 편에 붙는 경향이 있는데, 주로 말솜씨가 좋은 노엘 쪽이 파파라치나 패고 다니는 리암보다 더 많다. 다가오는 Big Day Out 투어는 리암과 그 동료들이 2005년 오아시스의 Don’t Believe The Truth 투어 이후로 우리 해안을 처음 방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전 카사비안 기타리스트였고 이제는 본격적인 베이스 멤버가 된 제이 멜러와 함께, 이 다섯-남자는 지금 최고의 상태이다.

“I feel lucky to be in a band,” enthuses Bell. “Making music, signed to a label, doing gigs, and if you’re lucky enough to be in that position you’re not allowed to complain, you’ve just gotta keep plugging away and hope that if people have these preconceptions that’s really their issue to deal with. They’re gonna have to learn at some point that maybe we’re worth a listen.

“밴드에 있을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다.” 벨이 열광한다. “음악을 만들고, 레이블에 계약하고, 공연을 하고, 그리고 그 정도 위치까지 갈 수 있을 정도의 행운이라면 감히 불평할 수 없겠지, 그저 꾸준히 일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정도의 선입견이 있다면 그건 정말로 그 사람들이 해결할 문제임을 알길 바란다. 그 사람들은 아마도 어느 순간엔 우리가 들을 가치가 있는 밴드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We’re comfortable with ourselves, and the only time when you ever come up against that [negative] side of it is probably when you’re being asked in interviews what you think of it. And then you have to come up with an answer, you have to quickly form an opinion on it in five seconds. But I don’t think there’s a negative side to this. The spin on Noel versus Liam is basically the hook that brings people in to read about the band, and then if they read about it maybe a few of them go, ‘I’m gonna go and check out that album’ and maybe they like it. So great!”

“우리들 사이는 아주 편안하다, 그리고 [부정적인] 그런 면을 마주하는 순간은 아마도 인터뷰에서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는 순간 뿐일 것이다. 그 다음엔 꼭 답변을 해야 하고, 5분 안에 빠르게 내 의견을 만들어 내놓아야 하는 것 말이다. 그렇지만 난 여기에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엘 대 리암이라는 상황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이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읽도록 하는 미끼가 되니까, 그리고 만약 그 사람들이 다 읽고 나면 아마도 그 중 몇 몇은 이럴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가서 얘네 앨범을 들어봐야겠군’ 그리고는 아마 좋아하게 될 것이다, 정말 좋은 일이지!”

Kitt Di Camillo

[theVine.com 2014.01.20] 겜 아처 인터뷰: "사람은 자기 자신의 역사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출처: http://www.thevine.com.au/music/interviews/beady-eye-you-cant-run-from-your-own-history-20140120-271768/

CHRIS LEWIS

Monday 20 Jan 2014 – 12:15 PM
Beady Eye: “You can’t run from your own history”
비디 아이: “사람은 자기 자신의 역사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Oh what became of the likely lads. Oasis splitting up in 2009 was felt as a mild tremor in Australia and as an earthquake in the UK. A cultural institution had come apart at the seams; the band that had epitomised Cool Britannia, sound-tracked the rise of New Labour and chronicled an entire generation’s adolescence had finally imploded under the weight of two of the biggest egos in modern music.

오 잘 나가는 청년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 더 리버틴스The Libertines의 동명의 곡) 2009년의 오아시스 해체는 호주에서는 잔잔한 떨림으로 느껴졌으나 영국에서는 지진과도 같았다. 이 문화적 상징은 점점 갈라지기 시작했었다; 쿨 브리타니아의 본보기였고, 신-노동당 발흥의 배경음악과도 같았으며 온 세대의 청소년기 연대 기록과도 같았던 밴드가 마침내 현대 음악계의 가장 큰 두 자존심들의 무게에 못 이겨 붕괴해버린 것이다. 
Out of the ashes, Beady Eye was formed; aka Oasis sans Noel. And the band have split the critics down the middle in the UK, much like their previous incarnation. Unsurprisingly, for every voice claiming their latest album BE to be the freshest and strongest Liam has sounded in years, there is another berating its delusional rock pretence and telling the youngest Gallagher to either rebuild the wonderwall with his brother or jog on.

그 잿더미 속에서, 비디 아이는 결성되었다; 일명 오아시스 빼기 노엘. 그리고 마치 그들의 전신과도 같이, 영국의 평론가들은 둘로 양분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한 목소리로 비디 아이의 최근 앨범 BE에서 리암은 그동안 들려준 목소리 중 가장 신선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과대망상적 록 허세에 불과하다는 말과 더불어 막내 갤러거는 차라리 그의 형과 함께 원더월이나 다시 부르든지 뭐든 하라는 질책도 있었다.

On the eve of their last-minute call up to the Big Day Out, guitarist Gem Archer remarks candidly on the glory days of being in the band that was supposed to be bigger than The Beatles as well as the fall back to Earth and regrouping as Beady Eye.

Big Day Out에서의 막바지 공연을 앞두고, 기타리스트 겜 아처가 비틀즈보다 위대해질 수 있었을 거라 여겨졌던 밴드와 함께한 지난 영광의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와 다시 돌아와 비디 아이를 재결성하게 된 일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보았다.


TheVine: Considering Oasis were so ubiquitous in the UK, did you find it hard to carve out a new identity for Beady Eye when you first came together?

TheVine: 오아시스가 영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밴드였던 점을 고려하면, 비디 아이와 처음 함께 했을 때 새로운 정체성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는가?

Gem Archer: I don’t think we ever thought about having to carve out a new identity, it was more a case of everybody realising that we weren’t going to get back together in one month’s time. We thought when we played our first gig that people would be shouting for the Oasis tunes, but by the time we had recorded the album and were ready to go on the road, it was fully formed.

겜 아처: 나는 우리가 새로운 정체성을 내보이는 것까지 고려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건 오히려 우리 모두 우리가 더 이상 한 달에 한 번씩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에 가까웠다. 우리는 우리가 첫 공연을 할 때 사람들이 오아시스 노래나 하라고 소리지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럴 시점에 우리는 새 앨범을 만들었었고 우리가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었을 땐, 모든 것이 갖춰지게 됐다.

But being associated with Oasis is inevitable, you can’t run from your own history and Liam’s voice will always be associated with those songs.

그렇지만 오아시스와 연관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보며, 사람은 그 자신의 역사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기 때문에 리암의 목소리 또한 언제나 그 노래들과 연관될 것이다.

When it all unfolded in Paris, was it hard for you personally to come to terms with the fact that Oasis was over?

파리에서 모든 것이 펼쳐지게 된 그 때, 오아시스가 끝났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는가?
To put my head in that space again, I think it was a great run, it was ten years of my life spent playing some of the best music all around the world to some of the best fans. I just tried to remember that and I tried to tell myself not to get too greedy, not to hold on to stuff.  It’s kinda like *makes sound of bomb dropping from sky* count the good times and just hope there’s more coming. It wasn’t as if Oasis had been around for a year and it was a case of what could have happened. It felt like it was time.

그 시간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면, 나는 그것이 위대한 여정이었으며, 내 인생에서 최고의 음악을 연주하며 최고의 팬들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보낸 10년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저 너무 많이 욕심부리지 말고, 너무 미련 갖지도 말자고 내 자신에게 말하려 노력했다는 것을 계속 기억하려고 했다. 마치 이런 느낌 같았다.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 좋았던 시절을 곱씹어보고 더 좋은 일들이 올 거라 여겼다. 그건 무슨 오아시스가 1년 밖에 안 됐을 때 벌어질 만한 일 같은 건 아니었다. 마치 때가 온 것 같았다.

Well there must be many aspects of the transition from Oasis to Beady Eye that have been a joy. You’ve played smaller venues and had a lot more freedom; do you feel like a new band again?

오아시스에서 비디 아이로 오면서 분명 다방면의 변화를 즐겼을 텐데, 더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다시 새 밴드를 시작한 듯한 느낌이 들었는가?
Definitely, but there have been certain challenges we’ve faced as well, like writing a whole new set of material after a career of performing Oasis’s music. It was like hitting the reset button. And we did say at the time that it was a good little spur on, because we stopped resting on our previous achievements.

물론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마주해야 했던 몇가지 도전 과제들이 있었는데, 가령 오아시스의 음악을 공연했던 경력을 뒤로 하고 완전히 새로운 곡 세트를 다시 써야 했다는 점이 있다. 마치 리셋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이런 일들이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고 말했었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지난 성과들에 의지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If you know you’re only going to need two or three songs from your new album when you go on tour then maybe that informs what sort of album you make. But if you said to most bands that on their next album they could only play that material on tour, they would dig down deep inside themselves.

만약 당신이 새 앨범을 냈는데 투어를 나갈 때 거기서 두 세 개 정도만 필요하게 됐다면 그 곡들은 그저 당신이 무슨 앨범을 만들었는지 정도만 알려주는 정도로 그칠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밴드가 투어에서 연주할 앨범이 단 하나밖에 없다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내면 속으로 깊이 파고들게 될 것이다.

And have you enjoyed playing a bigger role in the song writing of Beady Eye, away from the autocracy of Noel?

그렇다면 노엘의 독재에서 벗어나서, 비디 아이에서 곡을 쓸 때 더 큰 역할을 맡게 된 것을 즐기게 되었는가?

When Andy and I joined Oasis, Noel was always asking if we had any songs to bring to the band. Although we knew Noel was the writer, he was always very encouraging with all of us, and if we did have any tunes, we’d always demo them.

앤디와 내가 오아시스에 들어갔을 때, 노엘은 언제나 우리에게 밴드를 위한 곡들을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노엘이 바로 작곡가라는 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우리 모두를 격려했었고, 만약 우리가 어떤 곡이든 썼을 때는, 항상 데모로 만들었다.

And so now, we’re still writing the music, but we’ll do one of Liam’s and then we’ll do one of Andy’s and then one of mine and then back to Liam. But we flesh out all the songs together by jamming. Like on ‘Bring The Light’, Liam suggested we add more keys, he said he wanted it to sound like The Sex Pistols meeting Little Richard and so Andy (Bell) was just ‘avin it on the keys like a madman, it was a great laugh.

그리고 지금은, 우린 여전히 작곡을 하지만, 우리는 리암의 어떤 곡을 만들 것이고 그러고 나서는 앤디의 곡을 만들 것이고 다시 내 곡을 만들고 다시 리암으로 돌아오고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린 모든 곡들을 함께 즉흥적으로 연주하면서 만들어 나간다. Bring The Light을 만들 때처럼, 그 때 리암이 우리에게 건반을 추가할지를 제안했고, 이 곡이 섹스 피스톨즈가 리틀 리차드를 만난 듯한 느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러자 앤디(벨)가 그냥 그 자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건반을 두들겨댔었는데, 정말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Well both albums have made the Top 5 in the UK but only one single has broken the Top 40. So you’re writing good albums but do you need to write better singles?


물론 두 앨범 모두 영국 안에서 5위를 차지했었지만 그 중 단 하나의 싱글만이 40위권 안에 들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좋은 앨범은 만들었지만 더 좋은 싱글들을 만들었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 The Roller, 2011년에 발매된 첫 공식 싱글 앨범)

Well the charts aren’t what they were and the radio isn’t what it was and the whole thing is ever changing. It’s not the time for guitar music at the moment; it’s a different era. And how do you even calculate it now? All the teenagers are listening to music on Youtube.

차트 성적이 반드시 그 밴드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라디오에 나오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기타 음악의 시대는 아니다; 완전히 다른 시대다. 그리고 지금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집계할 수 있는가? 십대들은 모두 유투브를 통해서 음악을 듣는데.

Does that carry over to your opinion about critics as well? After so much rhetoric surrounding your former band, do Beady Eye care what the critics think of them?

그 말은 평론가들에 대한 당신의 의견에서 나온 말인가? 전 밴드에 둘러싸여 있던 엄청난 미사여구 말고도, 비디 아이는 과연 평론가들의 의견을 신경쓰고 있는가?

We do, of course we do. We don’t avoid reading stuff, but we don’t chase it either. As long as they give the record a go, I don’t mean attention, I mean if they properly sit down and find out what we’ve done, then it’s all good. But if it’s just gossipy shit, then you turn the page before the end of the sentence.

그렇다, 당연히 신경을 쓴다. 우린 평론을 읽는 것을 멀리하진 않지만, 그것을 좇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이 음반을 들어주는 한 그렇다. 내 말은 관심을 달라는 뜻이 아니라, 만약 그들이 제대로 정좌하고 우리가 이룬 것들을 찾아낸다면, 그러면 그걸로 됐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냥 가십투성이 쓰레기나 써놓는다면,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이다.

What was the conversation like with the band before you started adding Oasis songs to the Beady Eye live show?

비디 아이 라이브에 오아시스 곡을 넣는 것을 결정하기 이전엔 어떤 대화가 오갔었는가?
It all came about when we were asked to play with The Stone Roses at their comeback gig in Manchester and Liam suggested we play a few Oasis songs. I saw it as being the right place and right time, because it was The Stone Roses that awoke Liam to music as a teenager, it would have been mad for him not to play some of those tunes. From then on there was no discussion about it, because we had our own album and the genie was out of the bottle.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맨체스터에서 있었던 스톤 로지즈의 컴백 공연에서 공연하기로 했을 때 리암이 오아시스 노래를 몇 개 하자고 제안한 것에서 비롯됐다. 나는 이것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왜냐하면 리암의 십대 시절 음악을 일깨워준 밴드가 바로 스톤 로지즈였기 때문이고, 그 곡들을 연주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열광적이었을 것이다. 그 때 이후로 이 일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은 없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앨범이 있었고 램프의 요정은 이미 튀어나와버린 이후였으니까.
Are there any particular songs from the Oasis canon that you wouldn’t play live?

그 중엔 한번도 라이브로 공연한 적 없는 곡들도 있는가?
I don’t think we’d do anything that Noel sang the vocals on. But then again, you never know…

내 생각에 노엘이 부른 곡들은 그 어떤 곡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모르지, 앞 일은 모르는 거다…

Maybe you could step up to the plate on lead vocals like back in the Heavy Stereo days?

혹시 당신이 헤비 스테레오 시절처럼 리드 보컬로 나설 기회도 있을까?
No no no no man, Liam’s the voice of this band.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절대로, 리암이 밴드의 목소리다. 

Do you miss having Noel around?

노엘이 있었던 것이 그리운가?
Yeah of course, we see each other every now and again and we text each other, so it’s not like he’s vanished off the face of the earth. But he was always was great to play next to and to shoot the shit with in the studio.

당연히 그렇다, 요즘 들어서 우리는 자주 만나는 편이고 문자도 자주 하기 때문에, 노엘이 아주 지구상에서 발자취를 감춰버린 그런 건 아니다. 그치만 그는 언제든지 나중에 연주하기 좋은 사람이고 스튜디오에 굉장한 걸 내놓기 좋은 사람이다.

Well I am a massive fan of The Stone Roses and if you’d said to me a few years ago that I would see them play live in 2013, I would have thought you were crazy. But it happened. So if you were a bookie, what odds would you give me for an eventual reunion of Oasis?

참고로 필자는 스톤 로지즈의 엄청난 팬인데 만약 당신이 몇 년 전 2013년에 내가 스톤 로지즈를 라이브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면, 나는 아마 당신이 미쳤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내기를 한다면, 만약의 오아시스 재결합에 걸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An eventualreunion? Well I’m not a gambling man but the answer is it could happen, so it’s worth a wager.

만약의 재결합이라고? 나는 내기꾼은 아니지만 굳이 답을 한다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내기할 가치는 있겠다.

So what’s the best and worst thing about working with Liam Gallagher?

리암 갤러거와 함께 일하면서 가장 최고였던 점과 가장 최악이었던 점이 있다면?
I couldn’t even say what’s pissed me off, because Liam is Liam and I like Liam. People find it hard to believe because of this public image made by lazy journalists, but he’s a really top bloke. There is not a gig in the world he would turn away from, it could be Madison Square Garden or it could be upstairs in the boozer, it doesn’t matter, he’s unafraid.

내가 짜증났던 적이 과연 있기는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리암은 리암이고 나는 리암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 무척 믿기 힘들다는 눈치인데 다 게으른 저널리스트들이 만든 그 대중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정말로 좋은 녀석이다. 그가 외면할 공연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고, 그 공연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일수도 있고 술집 2층이 될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Finally, did you notice the irony of replacing Blur on the Big Day Out?

마지막으로, Big Day Out에서 블러를 대체하게 된 아이러니를 알아챘는가?
No not really, it was never brought to us as replacing Blur; their cancelation wasn’t even a story over here in the UK. It was brought to us as whether we wanted to go play the Big Day Out and we thought it was a fantastic way to start the new year.

아니 그렇지 않다, 블러의 대체 밴드로 우리가 여기 오게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취소 소식은 영국에서는 들을 수 조차 없었다. 이번 공연은 Big Day Out에서 공연하고 싶으냐는 요청에 의한 것이었고 우리는 이번 공연이 새해를 맞이하는 환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Chris Lewis
Beady Eye are on the 2014 Big Day Out tour.

[Fasterlouder. 2014.01.15] 크리스 샤록 "2013년은 우리에게 '끔찍한 해'였다."

Big Day Out 출격 전 호주 매체와 진행된 크리스 샤록 인터뷰.

Tue 14th Jan, 2014 in Features
비디 아이의 첫 호주 투어에 앞서 드러머 크리스 샤록이 MICHAEL HARTT과 함께 밴드의 뒤죽박죽했던 한 해를 돌아보다.
2013년은 비디 아이에게 있어 최고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다. 1분기에는 프로듀서 데이브 시텍과 함께 그들의 두번째 스튜디오 앨범 BE 작업하는데 보냈고, 밴드와 그들의 새로운 음악은 전작이었던 데뷰 앨범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보다는 훨씬 훈훈한 대접을 받게 된다. 이후, 앨범 투어를 위해 공연을 진행했었지만, 기타리스트 아처가 자택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이후 머리 외상으로 입원하게 되면서, 간의 강제 휴식과 함께 앨범 활동의 탄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아처가 건강을 회복하게 되면서, 해가 끝날 무렵 밴드는 영국에서 대규모 투어를 진행했고 막바지 무렵에는 Big Day Out 라인업에 추가되면서 리암 갤러거의 전 브릿팝 라이벌었던 블러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제 비디 아이의 호주 데뷔 투어에 앞서서 드러머 크리스 샤록(전 라스, 월드 파티 그리고 오아시스의 마지막 월드 투어 드러머)이 본지의 Michael Hartt과 함께 그 한 해를 되돌아본다.


빅 데이 아웃 라인업에 추가된 지 이제 막 한 달입니다. 연락을 받았을 때 놀랐었나요?
그래 놀랐어. 사실, 우리가 1월에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거든. 막판에 연락이었어. 깜짝 놀랄 일이었지. “, 우리가 호주에 간다!” 날씨도 따뜻하고 햇빛도 받고 좋을 거야. 항상 데이 아웃에서 공연하고 싶었어. 한번도 공연해 없거든. 멤버들이 전에 공연을 했었는지 했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여기에 예전 일들을 대입해보자면, 블러를 대체한 공연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는 조금 웃겼겠군요?
그럼, 그랬지. [웃는다] 아니, 정말로는 아니야. 그건 짖궂을거고. 오히려 와우, 그거 재밌네.” 가까웠어. 뭔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거든. 별로 일은 아니었어 사실. 전부 일이었는데 , 그렇지 않아? 그냥 우린 어딘가 있다는 , 자체가 좋았어. 특히 호주로는 말이지.”

제 3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2013년은 비디 아이에게는 복잡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앨범 평은 좋았지만 겜이 부상을 당했었죠. 밴드 입장에서는 어땠습니까?
우리에게 있어선 Annus Horribilis [‘끔찍한 라는 뜻의 라틴어] 였어. 말은, BE 내고, 공연 8개를 하고  바로 그 다음에 겜이 사고를 당했잖아. 때문에 3 동안이나 놓고 있어야 했고. 동안 살짝 조용했던 때문인 같아. 그런데 계속 그렇게 그림으로 보라고. 이건 음악에 대한 거니까. 우리 동료가 살아남았고 다시 건강해져서 돌아왔다면, 그게 제일 중요한 거거든. 같은 시기에 벌어진 같은 일이긴 했지만, 우린 이제 다시 돌아왔으니까.”

활동 중단 이후에, 그 해 말미에 영국에서 했던 공연들은 어땠나요?
다시 돌아오니 정말 좋았어. 때 영국에서 10개에서 11개의 공연들을 했었지. 우린 겜이 나아졌다는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계속 달렸던 것에 가까웠어. 겜의 타이밍이 좋았거든. 물론 비록 사고가 처음 벌어졌을 때는, 유럽과 일본에 예정되어 있던 공연을 취소하긴 했지만, 영국 투어 때의 겜은 정말 괜찮았어. 그 공연들은 우리가 했던 공연들 최고가 되었을 거고 아님 사람들이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남겼을 거야. 끝무렵은 긍정적이었어.”

휴식 기간에, 혹시 새 음악을 작업했었나요?
우리 모두 아마 각자 개인적으로는 음악 작업을 했을지도 몰라. 아마도 곡들은 중에서 나오게 될 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대부분은 그냥 휴식 시간이었어. 요리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웃는다]”
처음 BE 투어를 했을 때는 밴드의 연주 세션을 확장했었죠. 이번 공연에서도, 호른 세션을 데려올 건가요?
아니, 호른은 데려오지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세션을 봤을 때가 바로 겜이 사고 당하기 직전 공연이었어. 가장 마지막에 했던 투어에선 호른을 쓰지 않았고. 분들이 있었을 좋았지. 키보드 샘플 속에도 그분들이 있을 테니까 사운드는 큰 차이 없을 거야 [웃는다]”

셋리스트 이야기를 해보자면, 어떤 라인업을 예상해볼 수 있을까요? 두 앨범을 믹스한 것인가요? 아니면 또 다른?
생각엔 믹스가 같은데. 셋리스트에 뭐가 있을지 정확히는 몰라. 전에 영국에서 했던 셋리스트하고 같을지도 모르고. 약간 다일 수도 있는 ―  앨범에 특히 집중된 셋리스트라고, 일단은 말해둘게. 60% 정도는 곡일 거고, 30% 정도는 옛날 곡일거고 10% 정도가 진짜 옛날 거라고 해두지.”

오아시스도 포함해서요?
그렇지, 아마 정도는 계속 넣어둘 같아. 고객님들 만족시켜 드려야지.”

오아시스 때엔 마지막 앨범을 위한 투어를 함께했지만 같이 녹음 작업을 한 적은 없었는데요. 같이 앨범 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 실망했었나요?
, 약간 그랬어. 작업을 같이 했다면 좋았겠지만 나중에 가서는 결국, 공연은 같이 했으니까.” 됐지. 그럴 운명은 아니었어, 생각엔. 그건 감수해야지.”

이 곳을 방문한 다음에, 남은 2014년 동안은 비디 아이와 투어를 하거나 작곡/녹음을 할 예정인가요?
어느 정도는 바라고 있어. 호주에서 투어를 끝낸 다음엔 집에 돌아가서, 사흘 정도 다음 바로 유럽으로 직행할 거야. 그냥 옷만 갈아입고 끝날지도 [웃는다]. 그런 다음엔 일본으로도 거고. 생각엔 그때가 3 초가 아닐까 싶은데 그리고 다음엔, 우리가 진로를 바꾸게 될지 아니면 뭔가 하게 될지 아니면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될지도 사실 잘 모르겠어.”

그 다음엔 코첼라 공연 [일요일 밤에 아케이드 파이어, 벡, 뉴트럴 밀크 호텔과 함께 공연함] 이 있을 거예요.
정말? 우리 캘리포니아 가는 거야? 신난다! 거기 줄은 모르고 있었어. 이쪽으로는 소식이 늦게 온다니까. 사람들 나한테 아무것도 해줘. 그냥 드러머니까! [웃는다]”


*역자 주: 이 인터뷰에 언급된 2014 코첼라 공연은 인터뷰 이후 갑작스럽게 취소되었다. 같이 언급된 3월 초의 일본 공연은 이후 밴드의 마지막 투어가 된 일본 The Rollercoster Tour이다.

Beady Eye sideshow
Monday, January 27 – The Enmore, Sydney
Big Day Out dates:
Friday, January 17 – Western Springs, Auckland
Sunday, January 19 – Metricon Stadium & Carrara Parklands, Gold Coast
Friday, January 24 – Flemington Racecourse, Melbourne
Sunday, January 26 – Sydney Showgrounds, Sydney
Friday, January 31 – Bonython Park, Adelaide
Sunday, February 2 – Claremont Showgrounds, Perth

[Q. 2013.06] 이것은 비디 아이에게는 작은 발걸음이겠지만, 리암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translated by Peppermint

1부 보러가기: http://blog.daum.net/revolutionsong/8462846
2부 보러가기: http://blog.daum.net/revolutionsong/8462847

이 글에서는 Peppermint 님께 이미지를 제공해 직접 번역해주신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이 블로그는 타임라인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좋은 번역이 있으면 제 번역보다는 더 잘하는 분의 것을 소개하는 쪽이 여러모로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좋은 내용의 인터뷰고 화보도 잘 나온 이슈입니다.